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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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망이 번쩍번쩍하고 심장이 쿠웅쿠웅했다. 나만 모르고 살았네, 박영 작가님. 스릴러란 정보를 들어버려서, 주말엔 책 읽지 말고 몸 쓰는 삶 살자, 란 결심은 이번 주도 못 지켰다. 구경만 하려했는데 충격 속에서 다 읽었다.

 

욕망을 따르며 약자를 죽이는 일은 유구한 인류의 고질적 행태이자 문명 자체인데, 그럼에도 삽을 들어 올려 내리찍는장면 아니 문장에서 눈을 감았다. 신경 어딘가가 찔린 것처럼 이를 꽉 물었다.

 

교육받고 사회화되고 욕망만을 위해 살지 않도록 관리되지 않는 인간은, 촉발의 계기가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는존재로 변한다. 주저함이 없기 때문에 예측과 예방과 저지가 어렵다.

 

이번에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처럼 지나갈 거라고.”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가능한 자산이 있다면 욕망만큼 거센 동력으로 면죄를 꾀하고, 명분을 만들고, 진실을 더럽히고, 타인을 거침없이 공격한다. 그러니 그만큼 끈질기고 뜨겁지 않으면 처벌도 쉽지 않다.

 

인간은 반성보다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기억을 삼켜버린다.”

 

반백년을 살고 나서, 그보다 더 오래된 사건사고와 범죄들이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을 알게 되니, 15년 전이라는 소설 속 과거 역시 옛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와 면죄의 창성한 호시절인 듯 어지럽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니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 거다.”

 

미화되었지만 실은 기능적인 한국사회의 가족관계와, 개인주의가 뿌리도 내리지 못한 전체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도구주의적 쓰임에서, 어떤 열기들이 형태를 바꾸어 생멸하는 과정을 살다 지친 독자로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기분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벼랑 끝에서 인간의 품위와 선의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닐 듯싶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덜 유해하게 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이다.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은 행운.

 

그래서 더욱 모두 다 알면서도, 삶과 목숨과 가족과 그 모든 것을 희생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면서도, 함께 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항해야하기 때문에, 끝까지 용기를 낸 분들의 삶과 서사가 눈물겹고 존경스럽다.

 

그러니 그런 이들을 함부로 모욕하는 일은 저열하고 천박하다. 최소한과 최저선이 없다면 무엇으로 합의하고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나. 평화로워 보였던 공간의 괴물들, 아니 그저 인간의 어떤 진면목.

 

어른으로 사는 일이 무겁다. 알고도 모르고도 얼마나 많은 방관과 협력을 하며, 이익을 추구하며, 불의의 총합을 늘려가고 있는지. 그렇게 절망시킨 사람들은 얼마일지. 고단하고 피로하다고 외면한 순간과 삼킨 기억은 또……. 작품 전개의 속도감만큼 죄책감도 빠르게 돌아오던 작품이었다.

 

태워도 사라지지 않아, 덮어도 감춰지지 않아, 잊어도 지워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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