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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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하면, 나는 참 좋은, 존경스러운, 멋진, 아름다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특별한 순간과 사건에만 만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만났다. 그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있다.

 

내 생명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은 그 순간들을 상기할 때마다 든다. 내가 아는 것을 빼고, 모르고도 수많은 이들의 노동과 배려와 선의와 우정과 연대와 돌봄 덕분에 살아 있다. 이것은 늦게 배웠지만 가장 확실한 진실이다.

 

참 좋은, 존경스러운, 멋진, 아름다운 분들 중에서도 한채윤님은 큰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석유회사가 오염시킨 토양에서조차 거대한 가지를 펼치고 자신의 생명력으로 다른 생명들을 지켜낼 듯한 나무. 내 종교는 늘 그곳에 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다른 이의 사랑을 존중할 용기를,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용기를

 

아끼는 무지개색 색연필을 곁에 두고 글을 읽었다. 거의 모든 책을 만날 때마다 그렇지만, 놀라고 울컥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무엇보다 몰랐던 게 참 많다. 이러니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쓰고 읽고 삶의 경계를 겹쳐 봐야 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꾸준히 사랑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야기고 삶이다. 사랑이 힘이 세다고 믿고 싶지만, 혹시 그렇지 못할까봐 불안하던 기분이 스르르 녹듯 사라진다. 전쟁 속에서도 낙관하며 사랑을 잃지 않는 이가 있다.

 

밀쳐내고 숨기라는 질서를 의심하고 스스로 사유하며 만들어낸 정체성이 무지갯빛이다. 얼마나 많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 없이 말 같지 않은 지시를 그저 따르기만 하는지, 나치도 홀로코스트도 언제든 가능할 듯하다.

 

모자는 불편하고 우양산은 거추장스럽고 그냥 나가면 정수리가 타오를 듯해, 자꾸 나이를 들먹이며 광장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채윤님이 만드는 커다란 그늘이 있는 곳으로 홀린 듯 나가고 싶단 기분이 들었다.

 

뭘 좀 좋아하면 성애를 붙이는 이상한 유행이 있다(있었다). ‘면성애주의자는 면발에 성애를 느낀다는 뜻인가. 더 이상 괴이할 수 없는 표현이다. 한국사회에서 사랑이 품을 수 있는 범위는 고작 뿐인가. 정말 그렇다면 초라하고 빈약하지 그지없다.

 

내가 살아갈 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동성애 혐오가 강력해서 동성애자라면 돌을 던지는 사회가 살고 싶은 사회인지.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혀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신지. 그들의, 성소수자만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나의, 우리 모두의 인권 문제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말 같지도 않은 말 -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의 억지 연관 같은 - 을 함께 비웃어주고, 혐오를 제 이익을 위해 부추기는 자들을 함께 욕하고, 폭력이 곰팡이 피듯 번성하는 공간을 허용하여, 온라인 댓글에서 현실로 칼을 들고 나오게 한 이들을 밝히고 마주하며,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고 싶다.


 

동료와 친구들 중에 퀴어가 있는 것만으로 뭘 좀 안다고 생각한 오만을 겸허히 버린다. 한국의 퀴어사를 이렇게 더 배워본다(퀴어 역사서 아님 주의). 많이 읽으심 좋겠다. 놀랍고 재밌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공동체에 유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사랑이야기다. 나는 행복하니까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원칙, 이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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