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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한요셉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제이컵과 그레이스가 혼란스럽고 괴로운 만큼 독자 역시 안타까운 심정으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간지러움과 폭식 구토가 멈추기를 바라면서. 인간이 살만한 조건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도 된다. 이민과 정체성이란 거듭 소환되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른 한편 핵가족은 시공간을 확장해나간다. 38선이 그어지던, 남북으로 갈라지던 그때, 영원한 이별일 줄 몰랐던 이들에게로. 아무리 들어도 정말로 셀 수는 없는 수백만 명이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다.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한, 생사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
전쟁의 흔적이 재빠르게 지워진 시기에 태어난 나는 그 전쟁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회복은커녕 상처조차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조금 이해했다. 어떻게 다들 태연히 살고 계신 건지, 이렇게 잊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살아도 되는 것인지, 나도 잠시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책을 읽는 도중, 주한미군이 판문점에서 월북했다는 현실감 없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 속 제이컵의 월북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떤 혼란을 야기했는지를 읽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일의 동기가 해결하지 못한, 다독이지 못한 오랜 아픔이라 더욱 그랬다.
‘이산가족’이라는 익숙한 명명 아래, 수많은 이들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살아왔을지. 가족을 두고 혼자만 낯선 곳에 남은 이들은 새로 만든 가족 덕분에 살아갔을까, 헤어진 이들을 만날 염원으로 견뎠을까. 결국 얼굴도 생사도 확인 못하고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 어떤 심정일까.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없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은 억울할 따름이다. 제이컵네 가족은 이주민이지만, 하와이에는 선주민이 있었고, 강제로 편입되고 전쟁터로 파괴되었고, 억울하게 잃은 것들이 많다. 한반도도 그렇다. 38선이 생겨난 시절의 군인들이 아직 이 땅에 거주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보다 더 고성능 폭탄들은 여전히 인류가 관리할 수 없는 재난의 원인이다. 최악의 디스토피아처럼 지구의 바다는 핵오염수로 수십, 수백 년간 망가질 지도 모른다. 도쿄전력이란 일본 기업이 4조를 아끼기 위해 제 것도 아닌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무도한 짓을 벌인다.
작위적인 폭력의 흔적들은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부조리가 적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일상은 어떻게 문화우월주의나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비난과 선량한 차별은 너무 쉽고, 특혜를 인지하는 것은 늘 어렵다. 이 책은, 이주민으로 살아가며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고, 어느 곳에서든 선주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주민의 입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