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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망상 - 어느 인턴의 정신병동 이야기
무거 지음, 박미진 옮김 / 호루스의눈 / 2023년 7월
평점 :
“늘 세 가지 악몽을 꾼다. 어떤 협주곡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연주회날 프로그램북에 다른 협주곡이 적혀 있는 꿈, 무대가 미끄러워 연주하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꿈,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꿈(웃음).”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 우연히(?) ‘악몽’과 관련된 조성진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대범한 천재는 악몽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웃었다. 그가 연주한 음악을 치료제로 복용하는 팬으로서 안도가 되어 기쁘다.
내 악몽을 공개했더니 다른 이들의 악몽도 듣는다. 전공과 하는 일에 관련된 내용의 악몽이 꼭 등장해서 울컥했다. 트라우마에 크고 작은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다른 심리학책 내용이 떠올랐다. 다들 애쓴 만큼 상처가 있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무거를 따라 정신병원을 다니고 여러 환자들을 만나본다. 진단명만큼 무엇도 쉬워 보이지 않은 다양한 증상이 있다. 아는 것은 알아서, 모르는 것은 몰라서 안타깝고 막막하다.
수십 년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서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자신은 물론 상대방인데, 트라우마로 꽉 닫힌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용기도 방법도 대단하다. 집요하게 힌트를 놓치지 말고 심층 사고를 하는 직업이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시도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잘 서로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비전공자다운 낙관이 생겼다. 무엇보다 대화가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듣고 말하고가 모든 것의 시작.
힘들지 않은 증상은 없지만, 체험자에 따라 같은 증상도 발현이 다르지만,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괴물이 보여 도망갈 곳이 없는 ‘조현병이 있는 소년’ 이야기에 코가 시큰하다. 물이 피로 밥이 절단된 사지로 보이는 매일이라니.
“강한 빛의 자극에 나타나는 신경 반응이 전혀 없었다. 정말 시커먼 강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억눌리면 하늘이 검은 물로 꽉 차 보이는 걸까. 망상은 두렵고, 착각은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난다. 정신질환은 문학과 예술에서 늘 소재로 쓰였다. 작품을 보고 몰랐던 것을 관련 이론을 배우고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비밀을 말할 수 없어, 슬픔을 표현할 수 없어 자꾸만 삼키는 이들은 아마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먹방을 싫어만 했는데, 한국에서 유행한 콘텐츠의 심리 기저에는 여러 가지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던 삶의 구조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증상의 존재 자체가 환자의 생존을 위해 있다고 본다. 환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에 증상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논픽션처럼 읽고 썼지만 이 책은 엄연한 소설이다. 반전도 있다. 나의 무지를 반성하고 사회의 차별에 부당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관련 직종의 분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 아니기를, 질환과 증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확대되기를 힘껏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