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스토리 (보급판) - 양자역학 100년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 퀀텀 시리즈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이강영 해제 / 반니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물리학책을 한국어로 읽은 경험이 없다. 교재도 번역서가 아니었고, 필기도 마찬가지였다. 영어와 수학이 내게 가장 익숙한 물리학 언어이다. 번역된 대중과학서나 한국인 저자의 책을 읽으면 용어들에 멈칫한다. 괄호 속 영어 단어가 없으면 개념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동시에 재미있다.

 

이 책은 배울수록 미로 같은 양자역학을 한 줄기 흐름으로 만나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 경험은 힘들어도 역사적 경험은 가능하게 해주니 반갑고 귀한 책이다. 100년의 역사 속에는 내 기억 속 장면들이 등장하니, 그립기도 하다. 당시엔 낯선 고민이었던 질문이 정리되고 기록된 것도 반갑다.

 

논쟁이나 갈등의 면모 중에는 정량화(quantitative)할 수 없는 정성적(qualitative) 것들을 모두 환원하고 예측하려는 태도가 있다. 물증과 객관화가 설득과 공론에 중요한 경우에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리학이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것이라는 문장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론만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실험 물리학의 기억도, 이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도, 머릿속에서 재밌는 생각만 계속 하며 살고 싶다고 은밀히 바랐던 젊은 나도, 물리학은 물론 삶에 대해서도 이해가 얄팍했던 나도 양자역학의 역사를 들려주는 이 책 속 문장들과 함께 소환되고 흘러간다.

 

실체는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한결같은 환영이다.”(아인슈타인) 한결같아서 막막하고, 환영이라 홀가분한 이율배반적 감정도 이해될 만큼은 시달리며 꽤 오래 살았다.

 

이론물리학은 저만의 날개가 달린 존재 같기도 하다. 생각하고 또 하다보면, 실험이란 증명조건도, 지구환경도 툭 끊고, 우주공간으로 한없이 날아간다. 그 어느 순간, 과학이론은 사색적이고 형이상학적 문제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몸의 일부를 잘라 던지지 못한 모두가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속도로.


 

입자물리학이 가장 재미있었다. 당시에 입자를 몇 개나 배웠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2008년인가 힉스 입자 관련 소식을 들었던 듯한데. 자연에 존재하는 24종의 페르미온 입자, 반입자까지 48, 광자와 글루온과 다른 입자들까지 추가해서 60, 마지막으로 힉스 입자까지 61.

 

815,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가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American Prometheus>라는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도, 놀란 감독의 연출인 것도 꼭 봐야할 이유다.



 

과학이 완전무결하게 논리적인 과정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몹시 지난하고 누덕누덕한 작업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감정도 개입하고, 비논리 혹은 반논리적인 사고도 개입한다. 대책 없이 휘둘리며 어딘지도 모를 길을 한참 걷기도 한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불가역한 실수인지, 인류의 한계이자 함정인지, 해법은 몰라도, 영화를 통해 무엇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핵기술과 핵무기와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즐겁기도 그립기도 하며 읽었다. 원서의 부제는, A history in 40 moments이다. 읽기를 도전하시는 모든 분들이 40번의 우주적 순간을 가능한 흥미롭게 만나 보시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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