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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ㅣ 창비청소년문학 119
정은숙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듣기에 좋고 궁금도 한데, ‘완벽’이 들어가니 체할 것 같다. 보기에 완벽한 것도 문제, 스스로가 인정할만한 완벽도 문제다. 말썽의 소지이자 해로운 개념이다. 위트 가득한 반전과 통찰이 오히려 기대되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련의 닥침들 - 사기횡령, 도주, 전세사기, 불편한 집주인, 돈 문제, 싸움, 비밀 - 에, 어른은 물론 어디로도 갈 수 없고, 무엇도 해결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심정은 어떨까 갑갑했다. 그러다가...
“선빈 엄마처럼 직장을 오래 쉰 여자를 부르는 말이 있던데. 거 뭐야, 절단녀라고 부르던가. 아무튼 이제 과거의 일은 딱 절단 내고 눈높이를 낮춰요.”
이 문장에 웃음이 그치지 않아 괴로웠다. 웃으면서 웃어도 되는 건지 자기검열을 하며 왜 웃는지 질문했다. 물리적인 뜻은 무서운데 비유적인 의미는 통쾌한 ‘절단’이란 단어 때문이다. ‘단절’이 외력에 의한 행위라면, ‘절단’은 의지.
별 대단하지 않은 일상마저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인지, 확신, 확답, 절단... 이런 기회는 왜 없는 것인지. 이리저리 두루뭉술해진 선택과 타협들로만 삶을 얼룩덜룩 채워나가는 기분이다. ‘딱 절단’내란 말이 꽤 부러웠나 보다.
북클럽 대화 중에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장으로 끝나는’ 삶과 관계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는데, 생각해보면 꽤 많은 것들이 그 과정을 거쳐 의미와 애정이 변질된다. 연애, 결혼, 가족도 그리 다르지 않다. 곳곳에 내 일상어가 등장해서 청소년문학이 맞는지 자꾸 분류를 확인해보았다.
돌보지 않으면 금세 엉망이 되는 집처럼,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가족관계도 망가진다. 문제는 의미부여도, 기대도, 믿음도, 생각도, 개념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가족은 정말 친한 존재일까.
타인의 성취가 내 행복인 삶은 살지 말자고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지친다. 그런 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좋고 바람직한 가족이 될 수 있는 걸까. 문득 생각해보면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서 아찔하다. 확신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하소연에 다름 아닌 내 글과 달리 정은숙 작가의 인물들을 유쾌하고 씩씩하고 싸울 줄 안다. 개인의 영역 안에서 왜 답이 없냐고 서로를 들볶는 대신, 바꿔야할 게 사회의 영역에 있다면 그게 원인이라고 외면하지 말자고 맞서자고 한다. 이렇게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성장에 가장 중요한 배움이 아닐까.
다양한 결핍이 발생하는 현실에서의 삶을 부재가 아닌 아름다운 무늬로 만드는 이들이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못나고 약하고 여린 점이 있지만, 대체로 착하고 때론 용기도 내고 애를 쓰며 책임을 다하는 이들이 늘 좋다.
“사람이 관계된 일에 우스운 건 없어. 결과가 우습게 보일 순 있겠지만 그 일에 엮인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마음만큼은 함부로 비웃으면 안 돼.”
하루 종일 누군가를 조롱하고 욕하고 비웃는 글만 쓰고 사는 듯한 이들이 있다. 많다. 너무나 손쉬운 그 글을 보면, 글쓴이는 아무 것도 애써본 적이 없는, 삶 자체를 경험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고충도 아픔도 모르는 허깨비 같다.
교만할 필요가 없는 자신감을 갖춘, 부드러운 태도이나 예리한 통찰을 담은, 환하고 밝게 웃지만 경박하지 않은, 꾸미지 않아도 멋이 있는, 이런 것들이 점점 더 귀해진다. 이 책에는 그런 예의 있는 위로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