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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바소 셰어하우스입니다
하타노 도모미 지음, 임희선 옮김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단독 주택이 그리운 걸까. 표지 일러스트를 보면 그리움이 번진다. 셰어하우스라는 정보만 가지고 책을 펼쳤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겠구나, 그래도 조금은 말랑하고 다정하지 않을까 하는 앞선 짐작도 있었다. 그런데...!
팬데믹이다. 어떻게 지냈는지 충분히 묻지 못한 시절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연령 제한으로 구직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사회에서는 학력불문 콜센터 말곤 갈 데가 없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40세 이상 독신 여성 전용이라는 조건이 제한이 아니라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은.
팬데믹 이전의 어떤 삶의 풍경은 정말 잃어 버렸다. 다시는 무방비할 정도로 안심하고, 다 같이 어울리고 즐거울 시간은 없을 것도 같으니까. 각자의 상처는 깊고, 아직 흉터로 변하지 못한 부분이 몹시 아프기도 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미래는 보이지 않아. 열심히 노력한다고 꿈을 이뤄 줄 정도로 신은 자상하지 않기 때문에 (...)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사나 생각하면 누구나 불안해지는 거야.”
백세 시대가, 장수가 정말 좋기 만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헷갈린다. 복지 인프라가 엉망인 사회에서 오래 산다는 건 어떤 의미, 아니 현실일까. 결국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도 결국엔 혼자가 되어 죽음을 맞는 가능성이 더 확실해진다는 걸까. 젠더에 따른 빈부 격차와 노인빈곤은 더 심각해서 두렵다.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고 완벽하지 않아도 힘껏 대비해보려고 애써도, 고용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와 가난 역시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무겁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대화로 환기시켜보는 작품이 한편 대단하고 다른 한편 차려진 식사 한 끼 같다.
읽기엔 참 편한 번역이지만, 일본어를 알면, 여러 명칭들이 더 의미 깊게 다가올 것 같아 부럽고 아쉬웠다. 40대의 마지막을 살며, 다사다난하고 시난고난한 세월을 살아온 40대 여성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기분에 공감했다.
“우리는 마흔이 넘은 사람들이다. 현실은 그렇게 달콤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아 버린 나이였다. 기적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기에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지겹도록 망설임이 긴 나와는 달리 미치루는 더 현명하고 시선이 똑바르다. 행동은 곧 용기다. 나는 행동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용기가 모자란 사람이다. 망설일 시간이 얼마 없을 텐데.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를 끝까지 파 보는 게 중요해.”
어떤 문장들은 잘 녹지 않는 사탕인 양 입 안 가득 물고, 천천히 돌돌 돌리며 다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이런 고민을 해보고 싶다. 다정한 위로와 격려는 좋은데, 살아온 관성이 고집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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