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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박대겸 지음 / 호밀밭 / 2023년 6월
평점 :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소설. 가볍고 판형이 예쁘고 활자도 편안해서 잘 안하는 카페 독서를 했다. 주말인데 카페가 텅 비어서, 잠시 꿈을 꾸는지 현실인지 의심했다. 온통 여름인 풍경을 보며, 뉴욕의 여름으로 들어가 본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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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란 건축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해 시작된다는 설정 자체도 첫 문장이 이렇다는 것도 재밌고 특이한 작품이다. 와중에 <666, 페스트리카>라는 소설이 있는지 찾아본 나도 웃긴다.
주인공 필립은 소설쓰기가 아닌 소설 찾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책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1부가 끝난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여정을 따라다니며, 이야기는 내 짐작과 달리 낯선 전개일거란 기대와 설렘이 더 생겨난다.
전혀 모르는 세계의 전혀 모르는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만 같다. 글에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들도 대체로 낯설다. 나야말로 작가와 작품을 조사하고 찾아보려 떠나야할 듯한 기분이다.
일상의 풍경 속을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필립이 안다고 생각한 풍경과 대상들을 낯설 게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의 것들이라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는 일렁임이 좋았다. 그래서 궁금하다. 왜 자기고백인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었을까.
문득 필립의 삶에서 덮이고 묻힌 중대한 비밀이 있는지 추리 스릴러적 상상을 했지만, 드러나는 것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더 거대한 것이었다. ‘필립’이 자신이라고 믿은 존재 자체의 재구성, 관계와 주변 환경의 재편성에 준하는.
그렇게 이해하니 내가 생각한 소설의 역할에 잘 맞는다.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그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고, 엉뚱한 타인들을 이해하고, 내 삶과 내 생각에 대해 점검해보는 경험이 소설 읽기니까.
“독서라는 것은, 길을 찾는 행위라기보다는, 어쩌면 미로에 빠지는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소설 쓰기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필립의 첫 소설은 필히 자전소설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얼마간은 자기 이야기이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충동적인 문학 창작의 욕구가 결국 자신에게 닿는, 모범답안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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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곰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야 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곳으로, 자꾸 덮으려 하고 모른 척하려 하고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려 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6월부터 에세이가 전혀 안 읽혀서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책을 펼치면 입장 가능한 낯선 세계가 좋고, 그 시간이 평화롭다. 늘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책읽기로 달라지진 않지만, 버티고 견딜 힘이 보태진다.
창작을 하시는 분들과 읽는 독자들이, 깊어가는 여름 무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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