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구한 라이프보트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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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신을 구명한 듯한 작품이다. 형태가 무엇이건 사람은 누구나 붙들고 버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 무엇이건... 가능하면 모든 신과 종교가 전쟁도 차별도 파괴도 멈출 수 있는 가이드였다면 좋았겠지만.

 

이 불만은 세상 모든 종교가 사라진 세상을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학대하고 죽이는 이들이 여성의 돌봄과 배려, 아니 존재가 모두 사라진 세상을 모르듯이.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기록하는 이들이 어떻게든 힘을 내는 소식을 듣는다. 희망과 기적을 바라며 움켜쥔 아귀의 힘이 다 빠지고, 아무도 버티지 않을, 혹은 못할 시간이 올까봐 두렵다. 나는 겁쟁이라서 남보다 빨리 포기할 지도, 겁쟁이라서 마지막까지 포기를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설정이 초호화요트 침몰 후 구명보트 안이라 불과 얼마 전에 읽은 기이한 소식이 떠올랐다. 묘하게도 초호화여객선이 침몰한 근해에서 그 초호화여객선을 연구하던 이를 포함, 다섯 명의 부호들이 또 침몰한 사고.

 

인류는 영향력이 거대한 - 대체로 유해 - 문명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모든 생물의 최상위에 두었다. 인간 사회에서 부호들은 스스로를 더 대단한 존재로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이야기에서도 인간이 가치를 부여한 모든 것이 별 소용없는 바다라는 환경이 경이롭다.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느끼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필요해.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느끼려면 바다만 있으면 되는데.”

 

배움이란 대개 두 종류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르던 세계가 확장되고 모르던 존재를 알게 되어 기쁘고 황홀해지고 더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 같은 기쁨. 혹은 인간의 과오를 절감해서 부끄럽고 두려워지는 형벌 같은 자각.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무엇도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망망대해 구명보트에 힘이 미치지 못한다. 생존은 그래서 믿음을 요구하는 걸까. 구명보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내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기도와 이야기의 주제가 생존에 집중되는 시절이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은 그렇다. 인간이 죽으면 신도 사라진다. 아직 살아 있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바다와 육지를 지구 풍경으로 지속시켜야할 텐데.


 

예측되는 상실을 경험하기 전에 상실로 인한 통증이 점점 더 커진다. 이 책은 대상이 무엇이건 상실감을 다독일 것이다. 그러니 아직 낫지 않은 상처 입은 이들은, 잠시 붙들 물성 있는 종이책으로 만나면 더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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