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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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란 단어가 들어간 글을 읽지 않으려는 깊은 저항감이 있다.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분리와 거리감의 문제이기도 한데, 현실의 어머니와 관계가 바짝 다가들기 때문에, 대상으로서의 독서가 어렵다.

 

분석이든 개선이든, 내 현실이 아니라는 것만 거듭 확인하는 것도 지친다. 비상시적 북클럽 소식이 반가워서, 완독을 못하면 무자비하게(?) 스포일링을 당하는지라 그 핑계를 힘 삼아 읽었다. 짧고 건조한 문장도 많은 도움이 된다.

 

어머니 주위만 공기가 이상했다. (...) 어머니의 고독은 날카로웠다. (...) 오직 어머니만이 찬바람이 부는 마른 들판에 앉아 있고, 주위에 마른 잎들이 소리도 없이 춤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만큼 섬세하고, 직설적인 만큼 솔직하게 공감이 갔다. 작가들은 대단하구나 싶은 새삼스런 생각을 한다. 타인의 심리, 상황의 이면을 어떻게 이렇게 잘 이해하고 창작하고 펼쳐 보여주는 것일까.

 

가슴에 소용돌이치는 까맣고 분명치 않은 생각이 점점 더 까매지는 것이 느껴진다. (...) 불공평한 대우는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뜻밖에 자주 웃었다. 웃음의 색도 농도도 순전한 기쁨과 즐거움이라기엔 신랄하고 얼룩덜룩하지만, 체한 속이 풀리듯 조금은 가볍고 편안한 순간들이 와서, 그럴 땐 책을 잠시 놓고 시선이 가장 멀리 가는 풍경을 보곤 했다.

 

늘 먹는 약을 먹은 후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첫 잠을 잤다.”

 

영상이 대체로 지루하고, 책이 훨씬 더 재밌고 흥미로운 이유는, 책을 만나면 질문을 만나고 그 질문이 다른 책을 만날 때 소환되기도 하는 과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이 나이가 되었기에 가능한 질문들도.

 

이 책을 읽고 떠오른, 사라진, 남은 질문들이 여름 구름 같이 뭉게뭉게 피어서 놀랐고, 여기저기 남의 여행에 끼어든 것처럼 문장을 따라다니는 시간도 즐거웠고, 체리향이 문득 그리워졌다. 신선한 무언가를 오독오독 씹고 싶은 기분.


by_yucelind

 

지혜롭고 현명해지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찾은 비밀은 나이가 들면 철이 드는 게 아니라 그저 지친다였다. 각자 속도도 체력도 다르니 관계 속에 함께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더 지치는 일이다. 내 어머니는 아직 안 치신 듯.

 

내 것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한 채로 한 기대와 실망을 겪으면서도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만 어리석고 다들 멋지고 존경스럽게 사는 것처럼도 자주 느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을 궁금해 하고 좋아한다.

 

화가 나더라도 무관한 타인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최대한 타인에게 친절하라는 원칙을 진화의 증거로 여기고 포기하지 않는다. 오랜 타석이 되어준 내 어머니의 유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덕분에 처음 해본다.

 

그건 그렇고,

 

여학생이든 여자든 혼자 애 낳고 애 버리고 애 죽이고, 마치 늘 그랬다는 듯 쓰인 기사들. 한국 여성들만 단성 생식해? 같이 사고 친 남자xx들은 다 어디 있는 걸까. ‘착하고 순진한 우리 아들연기에 몰입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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