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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
정준희 외 지음 / 멀리깊이 / 2022년 12월
평점 :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이든 이른 아침이든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기가 난제다. 일요일 아침 좋아하는 원칙주의자 세 명이 언급되는 책을 펼쳐본다. 언론 자유와 저널리즘을 이야기하기엔 한국사회에 ‘언론’이란 게 있는가, 어디에? 싶은 심정이긴 하지만.
20세기 말에 ‘조선일보제자리찾아주기’란 게 있었다. 적당히 참여하다가 유학을 갔고, 8년 만에 돌아오니 조선일보는 제자리를 더 넓힌 듯 보였다. 다시 길바닥에 앉을 일이 많았고, 대선결과는 비뚤어지고 싶게 절망적이었다.
당선자의 ‘후광’을 노래하던 언론은 거짓속보로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실시간 촬영방출만 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공영방송에서 기어이 쫓겨난 언론인 손석희는 재벌종편에서나 볼 수 있었다.
잠시 무겁지만 이제 내딛는 발걸음은 방향만은 이전과 다르리라 기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후진도 아니고 다 같이 진창에 빠져 질척거리고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후광에 못지않은 저질스런 ‘날리면’이 현실이었나 싶지만, 역겨움만은 느낌조차 생생하다.
그래서 언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싶은 생각으로 존경하는 학자의 글을 읽었다. 단단한 사유는 짙은 활자와 편안한 줄간격으로 든든하게 펼쳐졌다. 읽기 어려울 거란 걱정이 무색하게 잘 읽혔다. 읽고 나니 기분은 좀 풀린다. 화가 들끓을 때는 말이 되는 말을 하는 이의 글로 하는 공부가 최고의 진정제다.
이런 현실에도, 언론과 민주주주와 진보를 고민하는 한국언론정보학회 소속의 언론학자들을 존경한다. 언론, 자유, 권리, 권력, 주권, 대행, 권한, 남용... 더 신랄하게 비판해주셨으면 싶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딜레마를 차분한 논조로 편안하게 설득해주셔서 감사하다.
“현재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안은 우선 언론 수용자노조를 결성하여 주목 노동의 착취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례하여 수용자로서 정당한 권리와 통제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언론의 콘텐츠가 불만스럽다면 과감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의 한 형태로 ‘언론 보지 않기 운동’을 펼쳐가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언론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라 언론을 시민의 통제권 하에 두면서 공론의 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 귀한 책 맞습니다.
! 읽으시기를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