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사이, 그리고 그 너머 - 백석과 개리 스나이더의 생태적 인식과 (비)인본주의
정선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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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를 먼저 알았고, 백석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90년 대 중반, 시대정신zeitgeist에는 생태주의ecology가 있었고, 급진적인radical 사상 중에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아르네 네스Arne Næss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도 연구자들과 수업이 있었다. 일상과 삶까지의 연결은 요원했지만 일단 부지런히 읽어 보던 책 중에는 미국의 생태주의 시인이기도 한 스나이더의 심층생태학 사상도 등장했다.


 

세월에 한참 지나, 희망도 기대도 사그라진 불안한 시절에, 그를 백석과 함께 한 책에서 만난다. 반갑고 새로웠다. 해체 분석이 아닌 거시적 관점이 좋다. 시인의 맑고 예리한 시선으로 본 세계의 모습과 예언들이 여전한 울림이다.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생태주의의 제언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두 시인이 무화시키지 않은 지역의 풍경들로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내가 선 자리에서 세계로 우주로 생명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그때는 젊어서 몰랐던, 삶과 죽음과 생명에 대해 이해가 아닌 공감으로 데려다준다.

 

인류 문명 전체는 어리석은 선택들을 너무 많이 해서, 그 대가를 다 치르는 결과 밖에 없다고 해도, 인간으로 살아봐서 기쁘다. 아름다운 이들을 많이 만나봐서 기쁘다. 시인들을 시를 만날 수 있어서 후회 속에서도 기쁘다.



 

뭔가 망하기 직전 회고록처럼 기운이 다 빠진 글이지만, 연구하고 실천하는 많은 분들이 어쩌면 기적을 일으켜주실 지도 몰라, 하며 늘 바라며 산다. 몰입도 헌신도 못하지만, 그분들 덕분에 그냥 막 멋대로 살게 되지는 않는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이나 강의들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그곳들에는 내가 보는 세상과는 다른 풍경의 조각들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고 감상할 능력이 부족하지만, 시는 늘 좋고, 생명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시들은 더 좋다. 시 속에서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해도 비치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름다워서 잠시 불안도 두려움도 잊는다.

 

무언가가 내내 그리운데 무엇인지 모르겠고, 늘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딘지 모르겠다. 그것들이 가슴을 치니 검푸른 멍이 아프다. 여름밤이라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잠시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어서,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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