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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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경계경보처럼 쏟아져 내리는 유무형의 폭력에 정신이 아득하다. 전작 <헬프 미 시스터>는 고민하며 성장하자는 든든한 손길이었다. 열편의 작품은 열 번의 의지와 격려가 될 것이다.

 

이서수 작가에게 나는 그런 믿음을 둔다. 버티고 견디고 다시 몸을 일으키고 서로 지켜봐주고 그렇게 함께.

 

한번 푼 문제를 기억하듯 한번 읽은 작품은 꼭 기억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참 읽다가 발견(?)한 이미 읽은 작품들이 있었다. 물론 읽기란 그때와 지금이 또 다르고, 내 상황에 따라 다르니 나쁠 건 없다. 이서수 작가의 웃픈 위트와 포기하지 않는 낙천만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짠하고 아프다.

 

6편이 재독 작품들이다. 심장이 아픈 <미조의 시대>의 풍경은 현재도 현실적이다. 몇 초간 눈앞이 어찔하고 귀가 징 울리는 느낌. 누군가는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을까.

 

<엉킨 소매>는 심장이 철렁하고 너무 늦지 않게 선택을 내릴 때까지 목이 탔다.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이 갑갑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기본과 주체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금새 우울해질 법한 소재지만, 작가의 배려 깊은 문장으로 웃고 말았다.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는 다들 어떻게 살고 계신지 문득 안부를 묻고 싶은 이들이 혼자라 아니라서 다행인 풍경이다. 근래 간호법 제정 이슈로 간호사인 사영의 이름이 덜컥 외워졌다. 어떤 방식의 우정이든, 굵기도 깊이도, 수명도 다르다는 걸 잊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나누고 큰 기대는 섣불리 하지 말자.

 

<젊은 근희의 행진>은 동생을 둔 언니의 심정으로 읽었다. 유튜버는 어떻게 직업이 되었나, 이런 제목의 책을 우선 찾아 읽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주목할 것은, 근희의 언니처럼 소위 경직된 내 태도이겠지. , 현실에서는 내 동생이 훨씬 더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유형이다.

 

<연희동의 밤>... 아주 확률이 낮은 성공이라서, 실패의 사례가 압도적으로 더 많을 거란 짐작은 컸지만, 그렇다고 안타깝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란 이른 것이라고, 꼰대 같은 생각을 위로와 응원처럼 해본다. 부디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관계와 연대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나의 방광 나의 지구>는 극한의 설정이라, 읽는 도중 내 배도 몇 번인가 아팠다. 어딘가 통증이 느껴지는데 아마 작중 인물들의 스트레스를 너무 생생히 상상했나보다. ‘살 공간이라는 기본권이 최악인 한국 사회. 그들의 선택(선택이라면)은 탈출과 대안일까, 포기일까. 결과적으로 현명함이었을까.

 

분량이 적어서 여러 편이 술술 읽히지만, 글의 반죽 농도가 진하다. 한번에 다 먹으면 체할 듯한 시의성이 주재료로 늘 포함된다. 남은 4편은 처음 만나는 작품들이라 더 기대된다. 창작 순서를 잘 모르고 읽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다.

 

젊지 않은 독자로서, 소위 낀 세대로서,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걱정만 가득한 문제들을 보면서, 작가가 단편마다 담아 둔 시대를 표방하는 주제를 갈피 없는 생각과 복잡한 심정으로 만나 보았다. 그럼에도 모든 이야기가 잘 읽혔다.

 

현재 진행형인 무수한 사건들, 많은 이들을 오랜 기간 힘들게 할 잘못된 결정들,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를 결정적 실수 혹은 범죄들,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의 배후에 이익만 계산하느라 현재와 미래 모두를 망치는 현상이 있다.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이다. 옳고 바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 손해보고 사는 것을 보아왔으니.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를 나와 무관한 것으로 관심을 두지 말라 세뇌 당했으니.

 

도대체 우리는 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나. 꿈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언니도 알았다. 꿈을 제대로 이루거나 완전히 버려야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공짜도 행운도 없는 삶은 그 대가를 철저히 요구한다. 구직, 주거, 빈곤, 고독사, 갖가지 중범죄, 폭력, 혐오... 걷잡을 수 없게 되었나 싶게 심해지는 모든 문제들이 합리적 이익 계산의 결과이자 실패의 증거들이다.

 

종이에 앉는 단어도 이렇듯 제자리가 있는데 우리는 왜 아무 곳에도 앉지 못할까.”

 

생존을 위한 시간도 공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인류의 멸종,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자연환경의 종말이 공식 발표된 시대이다. 생존에 필요한 시공간이 불안하니 꿈을 꿀 수가 없다. 무기력과 불안이 삶을 찌그러트린다.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가장 비극적인 미래 예측은 전지구적 파시즘의 도래이다. 현행 자본주의는 그 부작용만 극화시키고 수명을 다할 것이다. 빈곤한 대다수는 변화를 위한 동력을 잃고, 집중된 자본과 권력과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 지배당할 것이다.

 

이젠 그런 시대야. 기념비를 세우는 게 촌스러워진 시대. 단 하나의 기념비가 아니라 요리조리 상황을 살피면서 끼니를 이어가는, 자기 몸 하나 누일 곳을 확장해가는 그런 삶이라고, 우리는 순간을 살고 미래는 여기 없지만,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

 

물론 작가는 이 글처럼 비관으로만 시대를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도중 한없이 가라앉는 중에도 참지 못하고 웃기도 했다. 그건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다정한 위로이자, 글이 가진 힘이며, ‘행진을 응원하는 손길이기도 하다.

 

나도 꼰대 같은 응원을 보낸다. 그 행진에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마지막 장을 넘기며 떠오른 주제어는 연대였으니. 밖을 나가면 만날 수 있을 듯 친근한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를. 서로를 돌보기를.

 

우리는 종종 서로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이 서로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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