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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지난 주 친구가, 직장에서 착취당하고, 정서적 우울과 신체적 불건강 상태로 귀가해서, 잠시의 작은 위안을 위해 배달음식 시키고 유튜브 보는 순간들이 세계의 악화에 기여하는 행위가 된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했다.
나는 자주 여러 유혹에 시달린다. 그냥 포장해갈까, 몇 번 하지도 않는데 오늘은 배달을 시킬까. 이런 구조에 따른 책임 관계를 정확하게 계량할 방법 같은 건 누구도 모를 뿐더러, 벌금과 비난에서도 자유로운 무책임한 사회니까.
그런 내적 투쟁을 격하게 겪으며, 한번이라도 더 생각을 곧게 추스르고 겨우 쓰레기를 줄여가며 산다. 그런 노력도 0이 되지 않도록 하는 힘겨운 페달 굴리기라고 믿으며. 포기는 없지만 희망도 없어서 막막하고 서글프다.
이 책은 소설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요즘 더 못하게 되기도 했고, 책 속으로 열심히 도망을 가도, 현실에 붙들려 빠져나오는 일이 더 잦아졌다. 가까운 미래라는 배경부터 현재 같고 현실 같다. 대멸종은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동물을 계속해서 살육해 온 것처럼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멸종 직전까지 잡아 올렸다.”
짐작보다 더 복잡미묘하고 섬세하게 설정된 인류의 모습들에 이야기는 거대한 드라마가 된다. 영화화된다고 해서 이 주제가 환영받을까 했던 섣부른 짐작은 읽어가며 모두 사라졌다. 욕망도 감정도 생각도 행동도 모두 입체적이다.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정말로 여기 서서 이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도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까? 이들이라고 새들과 다른 게 뭐지? 내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보호하려고 하는 새들하고 뭐가 달라.”
프래니, 에스니, 사가니호 선원들, 나일, 생명이 가득한 검푸른 바다, 청어 떼, 북극제비갈매기, 그린란드, 빙하, 아일랜드, 야생화, 피오르계곡... 데뷔작을 해양학, 조류학, 기후학, 인간의 고독한 내면에 대한 사유로 채워나간 문장들.
“우리는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불가해할 정도로 짧은 생을 사는데, 그것이 인간이라고 해서 어떠한 생명체의 삶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자만심과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삶을 제공해 주는 이 행성을 함께 공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마이그레이션’을 지켜보는 독서일 거라 생각했는데, 읽는 동안 나도 현실도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원하는 일정 동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처럼, 이 책은 호주, 아일랜드, 그린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다시 적도로, 대서양의 바다로 데려다준다. 그러나 부정하고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법이나 초능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항해라서, 보려하지 않아 알 수 없던 다른 세계의 타인들의 삶과 생각 속으로도 훅 들어섰다. 다들 안쓰럽고 안타깝다. 우리 모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거라 슬프다.
“그들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도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인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경제성장이라고 결정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멸종 위기는 그들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대가입니다.”
포기나 좌절은 없을 것이고, 마지막까지 무언가 덜 유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낙관도 희망도 없어서 어린 사람들에게 할 말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서글픈 작품이다. 영화로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