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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평점 :
‘인생’이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할수록 ‘인생’으로 인한 모든 문제들에 회환이 쌓여간다. 고민이 될 때마다 무기력을 마주하는 난제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 ‘나 하나’, ‘오늘 하루’, ‘내 기억’에 집중해본다.
20대는 세상과 싸우며 내 가치관을 확립하는 시기였고, 필요하면 그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얼마나 많은 수의 동료가 필요한 일인지는 정확한 계산을 못했다. 지식도 경험도 적으니 기대와 믿음이 지나쳤다.
30대는 그렇게 만든 내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도 나와도 싸워야했다. 외압이야 저항도 무시도 쉬웠지만, 내가 끝없이 만들어내는 편견과 비겁함과 고집과 게으름은 대개 지고 마는 최강의 적이었다.
패배가 쌓여서일까, 그 이후 내가 되고 싶은 나가 되어 살아간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막 살아버린 건 아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라지 않았던 초능력을 발견했다. 평범한 일을 거르지 않고 어기지 않고 하는 능력.
‘젓가락은 두자루, 펜은 한자루…… 중과부적!’
알던 시들도, 새롭게 알게 된 시들도, 읽기만 했던 시들도, 이제 몸을 통과하듯 가까워지는 시들도 있다. 시 소믈리에가 함께 하는 책이니, 지친 날 예상 못한 배려와 서비스를 경험한 듯 위로가 된다.
물렁해진 내 머리를
땅땅땅 치는 소리
찰나의 모든 순간들을 포착하여 시를 만든 시인들 덕분에, 그때는 소중했던 지금은 더 애틋한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너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어떤 장면들에 항복하는 힘이 다 빠진 존재감이 좋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
각자의 삶, 각자의 경험, 각자의 감상. 전하고 설명하고 나누고 권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래도 인류는 늘 그렇게 나누고 함께 했다. 아직 포기와 좌절을 말하지 않는 이유에는 그런 분들이 버티고 계신다.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
그러니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일독 후 다시 표지를 오래 본다. <황혼에 물든 날Long Golden Day>, 앨리스 달튼 브라운Alice Dalton Brown의 작품이다. 어제 황혼은 이랬다고 선물 받은 사진을 본다. 온통 시(詩)였던 시(時).
‘다 공부지요’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