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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걷기 수업 - 두 발로 다다르는 행복에 대하여
알베르트 키츨러 지음, 유영미 옮김 / 푸른숲 / 2023년 5월
평점 :
‘엄청 행운’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갈수록 고마운 이들, 일들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걷기 명상을 배운 것은 생존에 깊이 관련된 다행인 배움이었다. 스승은 열반에 드셨지만, 그 스승의 걷던 모습을 떠올리며 걷는 동안, 접히고 구겨진 나를 펴고 세운다.
수면시간이 적어 기분이 좋지 않은 토요일 아침, 가능한 일상과 현실에서 멀어지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정신의 균형을 맞춰보았다. 대개 짜증이란 표면적 감정 반응은 본질적인 삶과 죽음을 사유하며 꽤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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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름이 시작된 첫 주말에 가능한 많이 오래 걸어보았다. 전시회 내부에서도 걸었지만, 5월과 다른 초록 풍경을 새롭게 제대로 보고, 걸으면서 얘기해보고, 더위도 느껴보고, 땀도 흘리고, 그 모든 것이 살아 있어서 할 수 있는 생명반응이라 시간이 아쉽고 더 애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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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떠올리고 의식하며 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득한 마음이 들면서 공허함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강렬한 자연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역시 바로 우리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공기를 한껏 들이쉬어 폐를 부풀려본다. 호흡이란 의식하지 않아도 가능한 기능이지만, 그래서 짧고 얕은 호흡만 한다. 천천히 깊게 숨을 쉬며 걷는 것만으로 생명으로서의 내 존재와 다른 생명들의 존재가 몇 배나 더 인지에,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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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의 일상과는 최대한 다르게 살아보는 주말, 해야 하는 일과 책임과 타인들과 맞춰야 했던 속도는 모두 일시 멈춤이다. 함께 걷는 동안에도 각자의 속도로 앞서거나 뒤서거나 할 수 있는 모두 다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자연이 허락한 예술행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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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것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존재가 자연이라면 어디를 걷더라도, 인간이 조성한 공원 안이라도, 계획하지 않은 자연을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목소리가 앳된 저 아이들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아이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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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에 속 좁은 분노쟁이지만, 밖으로 나와 걸으니 다른 존재들을 만나니, 엉켰던 기분도 칼날처럼 벼려지던 생각도 조율이 된다. 신경에 전원이 꺼지고 적당히 식어간다. 걱정도 불안도 이 순간에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몸의 움직임으로 인한 몰입flow은 치유Catharsi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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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던 때 만난 스승은, 이 책에 적힌 말씀대로, 내게 “멈춤의 기술, 휴식의 기술”을 그때 가르쳐주셨다. 걷기는 내게 호흡과 같다. 걷을 때마다 어울려 사는 법을 다시 기억해낸다. 고요하지만 멈추지 않는 삶을 마지막까지 살아보자고 다시 결심해본다.
“대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걷기는 우리를 더 선하고, 더 온화하고, 더 인간적이며, 더 공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대자연 속은 아니지만, 걸은 시간만큼만 나는 더 인간이 된다고, 부러워하는 미덕과 가치에 한 걸음씩 가까이 간다고, 그렇게 믿고 걸어볼 것이다. 오늘도 걸었기 때문에, 나를 배려하는 타인의 표정을 알아보고, 낯선 이의 다정한 인사에도 무척 반갑고 기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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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직이 될지, 퇴직이 될지는 아직 못 정했지만, 다음 ‘떠남’은 “지금까지의 삶과 존재를 변화시키는” 의미이길, 오래 불화한 삶의 면면과의 결별이길, 오래 바라본 그 목적지이길, 뒤늦게 찾아낸 솔직한 욕망을 현실화하는 곳이길, 함께 걸을 자연이 더 많은 곳이길 바란다.
너무 늦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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