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치광이 이웃 위픽
이소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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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이렇게 했나...? 배송된 채로 둔 책들을 열어보고 잠깐 놀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위픽시리즈를 두 권 주문했다고 기억했는데, <나의 미치광이 이웃> 한권만 달랑 들었고, <만조를 기다리며>책 없이 굿즈 손수건이 있고, <눈부신 안부>는 코멘터리 북이...


 

굿즈 구매 중단의 결심에 저항하는 다른 자아의 짓인가, 노안? 기억력/판단력 약화? 한밤의 졸음 주문? 몹시 허탈하다. 좋아하는 작가들/작품들과의 조우가 그냥 좀 늦어진 것뿐이지만, 미치광이 이웃 대신 미치광이 자신이나 파악해야 하나 생각하며 붉은 책을 펼쳐본다.



 

시인의 산문집은 종종 읽지만, 시인의 소설은 처음이다. 분류가 의미 없는 여러 장치들로 작품을 만드는 분이라서, 그냥 을 읽는다고만 생각했다. SF 디스토피아인가 했던 잠깐의 생각도 불필요했다. 현실이 매순간 미래로 바뀌고 있어서 무용하다.

 

오히려 잔혹한 현실이 너무 태연하게 펼쳐져서 이미 물에 잠기고 가뭄과 식량위기로 죽어가는 이들 소식을 알고 있었음에도 괴로웠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놀란 것처럼 아팠다. 미치광이들의 문명 시스템에서 다들 미치광이로 사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어...

 

지독하다. 독창성은 생존조차 불안한 처지에서 발현되고, 태연한 잔혹성을 서슴지 않은 고지대국가는 그 가족을 죽게 둔 채로, 남은 가족 미아를 교육 시스템 속에서 찬양한다. 계약서도 작성할 수 없는 신분으로, 자격의 부재로 창작을 지속할 가능성도 천재성도 휘발되고 만다. 무제라도 되고 싶었던 유리는 모사하는 인스턴트 아티스트, 작품은 밈으로 소비된다.

 

이렇게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태어난 나는, 왜였을까. 불행히도 나는 유화를 사랑했다.”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모든 걸 건 나는, 오지도 않을 기회를 상상하며 이 판을 견딜 궁리만 했다. 그렇게 그만 두는 방법도 모르고 용기도 없던 나는 포기할 기회마저 영영 놓쳐버리게 되었다.”

 

나는 나를 망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뭘 해도 미아만큼은 될 수 없었다. 당장에 죽지 않으니까. 배고프지 않으니까 그랬다.”

 

나는 모르는 소위 예술 세계에서 이런 일들은 이미 발생했고, 오래되었지만, 소비자인 우리는 수상되고 전시된 예술만 만나게 되는 것일 터. 시도, 산문도, 소설도, 또 다른 예술 창작의 일도 일견 무작위처럼 보이는 그 일시성에 어지럽고 아찔하고 떨리고 두렵다.

 

자아가 없을수록 작가가 살아남는 이 세상에서 예술가는 기억력이 좋고, 모사를 잘하기만 하면 된다. 에스프리는 소용없는 것이었다. 배고픔 앞에서는 전부 불필요한 것이었다.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을 해주고 있었다.”

 

이 그림은 미술관에 걸림으로써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꽃이 아니라고. 그러나 내 눈에 그냥 꽃이었던 작자 미상의 꽃은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했다. 비비드한 색감에서 음울함을 찾는 것은 나에게는 영영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작가의 서명이 작품의 일부로, 한줄 평으로, 혹은 작가가 경험한 삶 자체로 읽힌다. 이 작고 가벼운 책에 미친 듯 새겨진, 본 듯한 착각을 내게 일으키는 세계의 풍경. 체리초콜릿바처럼 생긴 책을 와작 씹어 보고 싶어진다. 호흡과 명상을 하자. 미치기엔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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