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수업 -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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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처럼 살고 싶었다는 저자의 결심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스스로를 색채학자로 여긴 괴테는 내게 20년을 색()연구에 매달린 과학자로 더 선명하다. 간딘스키가 그의 색채론을 이어받았다고 해서, 덕분에 강렬하고 뜨거운 추상 작품들을 데이터 분석하듯 한참 보곤 했다.

 

이탈리아에 가기 전, 누구나 명저라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었는데, 번역 탓인지, 과문한 내 탓인지 당시에는 큰 감동이 없었다. 겨우 20여년 살았던 지극히 제한적인 경험뿐이어서 충분한 문해와 감상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었을 지도.

 

이제 반백년 가까이 살아본 덕인지, 그보다는 문학과 예술과 일상과 글쓰기와 자신에 대해 시간만 보장되면 끝없이 쓸 수 있을 듯한 저자의 문장 덕분인지, 책의 풍경을 따라 걷는 속도로 문장과 사유를 따라가면 여행기 같기도 저널 같기도 교양수업 에세이 같기도 한 재미가 있다.

 



한국에서 호퍼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다. 미루다 못 가게 될까 회화 전공한 사촌과 몇 해 만에 만나 서둘러 가서는, 1층에서 상영하는 다큐에 빠져 끝까지 보고 미미한 체력이 다했다. 전시된 작품들에는 큰 감동이 없었으니, 주객전도식 전시회 방문이 아닌가 사촌과 실컷 웃었다.


 

아쉬우니 재방문을 약속하고, 그 전에 이 책을 읽고 감상력을 채워보리란 결심을 했다. 4계절이 지나는 뉴욕의 일상을 따라 즐기느라 계획한 예술력 함양 공부는 도중에 다 잊었다. 그보다는 낯선 환경과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여행이 문득 간절해지곤 했다.

 

뉴욕에서의 1년 동안 나는 매일 썼다. 낯선 환경,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을, 모조리 붙들어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오래 걷기를 좋아하고, 여행이란 거주민들과 어깨를 스치며 천천히 걷는 동네 산책이 정수라고 여기는 지라, 저자가 걸으면서 담은 여러 생각들, 이방인에게 보내는 시선을 피해 잠시 간 곳의 풍경, 추도미사와 같은 일상이 진한 향기처럼 깊이 호흡되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어떤 연령이 질풍노도인지는 각자의 시기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명칭이 무엇이더라도, 전환기라는 자각 혹은 전환을 하고 싶다는 생각, ‘살던 대로의 것들을 중단하고, 정리하고 이직이나 이사를 해고 싶은 기분. 단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일 수도 있을 순간들.

 

회사에서의 미래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미래를 대비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 한번쯤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스스로를 낯설게 하고 싶은 시기에,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산 시간이 그래서 부러웠다. 체험 학습 같기도, 신경 안정제를 조금씩 복용하는 시간 같기도 한 독서였다. 저자는 열심히 놀았다고 하지만, 폭발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에너지를 발산하며 치열하게 생존한 기록 같은 느낌도 있다.

 

괴테와 호퍼만 등장하는 책이 아니다. 조지아 오키프, 존 슬론, 로버트 인디애나... 예술가와 작품들을 만나 또 새롭게 배워가면서, 문학도 그렇지만 예술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얘기만 들으라는 강요는 작품에서 들리지 않는다.

 

책이나 음악과 달리 그림은 복제본을 소유하는 게 의미가 없잖아. 장소 특정적이라 그 도시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림과 관람자 간에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거지. 어떤 그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그런 관계 때문이라는 거야.”


 

재관람을 꼭 가야겠다. 잠시지만 고민 없이 그림을 바라보는 고요하고 호사스런 순간을 통해 관계맺기를 할 기회니까. 관습적인 기준으로 보면 제 품을 내줘야하는 나이에 엄두를 못 내고 산다. 예술가와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만나서 아주 조금 더 여백이 생겨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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