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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주살이에 진심입니다 - 자기만의 방법으로 제주살이 꿈을 이룬 다섯 명의 여자들
김정애 외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23년 4월
평점 :
몇 해 전부터 제주로 이주한다는 친구, 지인들의 소식을 듣기 시작했다. 무척 편안하고 좋아하던 바를 운영하던 부부도 폭력적인 술주정 손님을 겪고 제주 이주를 결정했다.
어릴 적엔 부모님 친구 분이 사셔서 초대도 받고 친척집 놀러 가듯 가본 제주인데, 이제는 내 친구들이 더 많이 사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종종 가곤 했지만, 제주에 살 생각은 못했다.
아침에 출발하면 천천히 하루 종일 운전하며 한 바퀴 돌아오는 제주섬이 분단된 반도보다 더 갑갑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제주땅에 선 내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여행 중일 때는 제주도민들이 나누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가만히 들으면서 짐작해보는 것으로 재밌는 추억이 생겼다고 여겼다.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배울 수 있을까.
지금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결국은 준비부족으로 또 어그러질 지도 모르고, 용기부족에 월급중독으로 불안에 걸려 제 자리에서 넘어질지도 모르지만, 생활 반경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좀 더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싶다.
몰론 현실적인 문제들은 아무리 양보해도 남는다. 적지 않는 문제들 중에는 공공의료가 비참한 수준인 한국에 대한 고민도 크다. 병원 접근이 쉬운 도시아파트에 살 것인지 멀리 가 볼 것인지.
머릿속에는 현실적 고민들과 개인적 문제들을 가득 안고서 책을 읽었는데, 저자들이 설렘과 현실의 차이를 겪은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주어 점차 책에 착륙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괴리 안에서 세우는 계획이 진짜 설계도이니까.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다면 제주에서의 삶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 각자 다른 이유로 꿈꾸겠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찾은 상태에서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오면 좋겠다.”
귀촌과 귀어를 하는 이들을 알아보면, 어릴 적에 농촌과 어촌에 살았거나 부모님들이 그 고향에 계시는 분들이 많고, 일상과 일에 낯설지 않아서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마 제주에 가더라도 나는 제주시에서밖에 살 수 없을지 모른다. 혹 타박을 듣거나 냉랭히 대하더라도 지금 생각으로는 주민들을 원망하거나 섭섭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다. 낯선 이주민을 위한 감정 노동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9810.html
<제주 해변 덮은 ‘시공간 초월’ 쓰레기>
해녀가 되고 싶었던, 농사를 짓고 싶었던, 창작활동을 하려던 친구들 모두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산다. 아직 적응 기간이라고, 삶은 한 달, 일 년 이런 계약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걱정은 접어 두었다.
그저 어디라도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런 책이라서 반갑고 고맙게 읽었다.
“쿠팡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매일 핑크빛으로 노을 지는 제주 하늘이 없이는 이젠 살기 힘들 것 같다.”
사진 : 제주 감귤꽃, 지금 제주엔 귤꽃 향기가 가득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