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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샤라 휠러와 키스했다
케이시 매퀴스턴 지음, 백지선 옮김 / 시공사 / 2023년 3월
평점 :
작년 6월, 독일에서 케이시 매퀴스턴 책 두 권 전시된 것 보았다고 친구가 알려줬는데 벌써 번역 출간이 되었다. 놀랍고 반갑다. 제목만으로는 상상이 멀리 가기 어려운 독자라서, 지쳐서 순순히(?) 책을 잘 따라 읽을 목요일 만남을 예약해 두었다.
추리, 미스터리, 로맨스라 기대 가득. 작가의 메시지는 짐작과 많이 다를 거라는 친구의 힌트와, ‘성격이 나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즐겨 쓴다는’ 작가의 자기소개에 더 설레며 펼쳤다.
‘샤라 휠러’와 키스했다, 가 아니라 샤라 휠러가 키스를 했네. 동의 없는 갑작스런 키스는 폭력과 범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서 살짝 당황했다. 더구나 키스 후에 잠적했다. 일단 고구마 먹은 기분이지만 계속 읽어본다.
응? 한두 명에게 갑작스런 키스를 한 것이 아니네. 남자친구가 있네. 왜 이러는 것일까. 이 ‘사건’이 흥미로우려면 잠적한 샤라를 찾아나서는, 그 대답을 원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완벽한 잠적을 원한 건 아닌 샤라는 단서를 많이 남겼다. 청소년 독자라면 단서 찾기와 추리도 재미있을 듯하다.
십대인데 이렇게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야하는 삶의 조건들이 안타깝다. 소설도 현실도 비슷한 것이 아프다. 어른이 되어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살기가 어렵다고 설명해야 하는 어른의 처지도 서글프다.
조직과 공동체는 개인을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을 진다고 믿고 싶은 나는, 기대한 역할이 아닌 상황을 마주하는 것도 괴롭다. 특히 학교... 어린 사람들에게 대한 애정과 교육철학과 가치를 믿고 지키는 의지가 없다고 어째서 교육계에 종사할까, 하는 순진한 분노를 느껴본다.
어째서 인간은 성장하면 이토록 위선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걸까. 인간의 수명이 짧아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곱씹고 배우고 변화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지만, 누구도 직접 경험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내게도 강고한 위계와 차별을 이야기로 보니 화가 나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웠다. 글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결말에 이르는 느낌은 시원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감과 코믹한 재미를 갖추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는 영리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