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 을유세계문학전집 125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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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문학이라고 구분된 작품은 처음 읽었다. 직설적이고 가감 없이 담긴 당시 유대인의 삶을 과문한 역사 지식을 채우듯 배울 기회라고 기대했다. 일반 명사 하나인 제목과 달리 초반부터 생생하고 선명하게 펼쳐지는 위협적인 분위기가 상당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인으로 살지만, 반유대주의가 극에 달한 러시아에서 자신을 숨기고 사는 일,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마냥 남 얘기 같지는 않았다. 할 말은커녕 생각조차 자유롭지 못한 채 먹고 사는 일을 연명하는 이들은 지금 여기에도 많다.

 

어느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전쟁은 인류에 대한 범죄case로 확정되면 좋겠다. 일상에 폭력이 만연해서인가 전쟁이 특정 사건incident’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이 막막하다. 2022년 봄에 발발한 전쟁을 나도 어느새 잊고 산다.

 

읽기 전과 달리 읽는 동안에는 늘 하던 고민들이 거듭 소환되었다. 인간으로 사는 일, 인간이 하는 일, 방향만은 잊거나 잃지 않아야 하는 지향할 가치, 혼란 속에서도 확연해지는 진실. 자전소설이나 유대문학이라고 한정 지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오래 고민하고 모자이크처럼 맞춰봐야 할 주제를 다루는데 식료품점은 헤매지 않아도 좋을 공간이다. 등장인물들 이름을 적어두고 관계도를 그리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라 반가웠다. 나는 소시민과 유사성이 더 많은 독자이지만, 모리스와 프랭크의 생각에 밀착해보는 읽기가 즐거웠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런저런 이유와 제약으로 서로의 삶에 실질적으로 반응하거나 영향을 주고받거나 조율할 계기가 되는 관계는 드물고 귀하다. 깊은 관계성이 그립기도 하지만 만들어가야 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시도할 엄두가 안 난다. 인간으로서 인간관계가 점점 피상적이 되는 방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지 문득 두렵다.

 

모리스 씨, 아저씨는 무엇을 위해서 고통을 받으세요?”


 

소위 막 즐기며 살지도 않았고, 가능한 성실하게 바르게 일하며 살던 이들에게 남은 것들이 기대한 보상은커녕 가난과 차별과 모멸이라면... 모리스를 보며 느낀 감정의 색들이 한국의 고령층에 대한 쓰라린 기분으로 번진다. 속이 울렁거린다. 누구의 삶이라도 좀 더 안전하고 존엄했으면. 남 일도 아니고.


 

창 밖에서 안의 풍경을 바라보다 동사한 성냥팔이 소녀, 12시간을 일해도 창 안쪽에 머물 수 있어 만족하는 작품 속 프랭크, 69시간과 60시간 중 선택하라는 듯 어불성설이 떠도는 2023년의 한국사회, 어쩌다 이토록 유사해 보이는 건지.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잘 읽히는 번역이 고맙다. 을유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읽지 못했을 세계문학/예술 도서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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