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할 권리
아미아 스리니바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생 -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는지 참담한 일이지만 - 에서 살아야 할 얼룩말 세로 탈출(?) 마취 포획 사건을 기사로 읽었다. 사진을 더 오래 보았다. 쉽게 말이 되지 않는 슬픔이 가라앉듯 서서히 차올랐다.

 

인간과 인간의 식재료로 사육되는 동물과 반려동물, 기타 등등 인간이 필요해서 살아남은 동물을 제외한 야생동물은 전체의 3%도 안 된다는 통계를 본 지가 오래고, 전 세계 포유동물 무게를 재어 비교해도 역시 비슷하다.

 

인간의 발명품인 플라스틱은 극지방과 심해까지 못가는 곳이 없으니, 야생과 자연이란 개념으로만 실존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다라는 비유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토요일을 시작했다.



 

출간이 작년 9월인데 읽지 못할 것 같았고, 필사를 시작한 친구 지인들의 모임도 소식이 없다. 기록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지만 다들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소화에 많은 노력이 드는 진지하고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수백 가지 사유의 실마리들 중에 자연스러움이란 억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모두가 남성여성으로 태어난다는 흔한 생각, 그렇게 태어난 신체 자체는 자연스럽다는 것, 사회화되는 건 정신이라는 오도misguide.

 

섹스는 자연적인 것임을 가장하는 문화적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섹스sex와 젠더gendre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미 섹스 자체가 가면을 쓴 젠더다.”

 

신체는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된다. 분류된 신체는 출생 직후 사회적 목적을 부여받는다. 그런 신체가 하는 행위들은 자연스러운것이 아닌 사회적/문화적인 것이다.

 

분류된 섹스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섹스는 그 역할을 하기 위해존재하며, 사회화의 내용에는 다른 신체에 쾌락, 소유, 소비, 숭배,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다른 신체의 가치를 입중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한다. benefit이라기보다 profit인 이익 증대를 위한 판을 짜는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놀이판이다. ‘자연은 자원으로서가 아니라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섹스는 자연스러움과 사적인 것에서 까마득히 멀리 있다. 섹스 행위는 공적인 것이며, 감정, 제공, 수혜, 욕구, 필요, 이득, 고통, 규칙, 합의, 법률... 이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정치 영역에 속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전부터 성적 자유를 꿈꿔왔다.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성적 자유의 시뮬라르크, 그러니까 평등해서가 아니라 흔해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는 섹스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정에서의 정치활동의 원형에 가까운 정치를 배우기에 한국사회는 그리 좋은 훈련장은 아니다. 정당과 정치인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는 목소리가 발언권이 있다는 것은 무척 모순적이다.

 

누구를 겁박해서 말을 못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진짜 포용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불편하고 안전하지 못한 정치일 것이다.

 

희화화되고 웃음거리로 소비된 세로는 인간도 시민도 아니다.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가진 주체agent가 될 수 있을까. 없다면 대리인은 누가 되어야할까.



 

일곱 번인가 맞은 마취총의 약기운이 다하고 나서 다시 본 풍경은 세로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진짜 집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