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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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음이란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진행된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뇌에 모욕과 충격의 수용체라는 것이 있다면, 상당히 오래 전에 과부하를 넘긴 듯하다. 보고 듣고 읽은 것을 처리하는 속도와 이해 사이 간극이 점점 커진다.


기록은 사건 발생 시의 기억법이자 잊지 않아야할 것들을 저장하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현재를 살 수 밖에 없고 현재에 집중하려 하지만 주춤거리고 멈추게 하려는 힘은 늘 기억하는 과거에서 온다.


그 긴 세월 해본 적도 없는, 현재를 점유하는 일을 대체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


누적된 슬픔과 고통에 더해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시적인 전략으로 활용된 차별과 혐오에, 그 차별과 혐오가 권력을 갖는 모습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가족 친구들과 서로를 위로할 힘마저 허망하게 놓치게 한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 - 공표, 분노, 치욕 - 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대단한 희생과 노력을 하는 삶이 아니라 내 하소연은 징징거림과 구분이 어렵다. 피해와 가해의 경계가 모호해서, 일상에서 의도하지 않고도 가해자로 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폭력이 일상성을 확장하는 시절도 견디기 괴롭다.


할 수만 있다면 개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지만, 집단, 사회, 국가, 집중된 권력 차원의 규정이자 폐해라서 무력함과 무기력은 매일 짝을 이뤄 방문한다. 누구의 일상도 휘두르는 정치 현실이 참혹하다.


고공관찰자처럼 건조하게 살 자신은 없다. 이론과 삶의 괴리를 봐주지 않는 페미니즘에 따라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 자신도 없다. 내가 나를 설득하지 못할 때마다 나의 강고함을 절감한다.


불경스런 불만이 삶을 끝없이 가로막으리라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여정의 의미임을.”


일희일비는 물론 자기합리화의 방식조차 일변하는 나에게 본원적이고 고유한 것이 있을까. 반백년을 살아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윤곽을 겨우 알아차렸으나 지향할 수는 없다. 몸 하나 가방 하나로 지금의 삶을, 관계의 책임과 겨우 마련한 엉성한 사회적 안전망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확실히 할 줄 아는 건 몽상으로 세월 흘려보내기였다. 그저 상황이 달라져서 나도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는 것.”


포기나 좌절은 마지막에 하면 된다고 하지만, 오래 전 스승이 가르쳐준 걷기 말고는 내외의 적대감과 슬픔을 흩어낼 다른 묘안이 없다. 더 이상 솔직할 수 없는 책을 읽고 내 삶도 대면하려는 야심이 지나치게 가득한 날들이 흘렀다.


산보객이란 대도시의 거리 곳곳을 정처 없이 거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목적을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는 군중과 면밀히 대비된다.”



괴롭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라서 더 괴롭다. 30년의 간극을 두고 쓴 책을 읽으며, 애착보다 덜 밀착된 관계에 다양한 타인과 우정이 채워지는 삶을 긴밀하게 느낀다. 고닉이 산책길에 공기를 나눠 마신, 스쳐간 누군가의 호흡처럼.


1970, ‘역사의 다음 순간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글을 쓴 고닉은 여든여덟에도 다음을 위해 걷고 있다. 저널리즘이 뜨겁고 생생한 목소리로 기능한 1970년 미국을 상상해본다. 항의와 협박은 2023년 내가 목격한 풍경과 놀랍게도 유사하다.


30대 고닉은 무엇에도 쓸려 나가지 않고 다음 순간next moment'으로 나아간다. 그곳은 미처 기록되지 않은 역사로부터 이어진 여성들의 고통과 괴로움이 자유과 인권에 대한 요구로 전환되어 울리는 현장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촘촘한 사회의 층위들을 더 이해했을 것이다. 목소리와 메시지가 선명할수록 모두가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고닉이 경험하고 기억하고 사유하는 여성이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조건들에 대해 이해하고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모임을 하다가 한 친구가 식민지성, 남성성, 백인성 배틀을 해보자고 농담처럼 제안했다. 내가 이길 것 같아서 미리 항복했다. 조건화되고 사회화된 는 완치 없이 재발한다. 진단과 처방보다 재생산되는 환상이 더 빠르게 스며든다.


운이 좋아 학대, 지속적 가스라이팅, 차별과 폭력이 가시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명예남성처럼 느끼며 살았다. 페미니즘은 대학시절 시대정신 중 하나로 교양으로 배우면 되는 줄 알았다.


인지도 배움도 연대도 부족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도 뜨겁게 모였다 무너지기도 했을 것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해체되고 흐려지고 느슨해지는 연대가 2023년 내 현실에서 진행 중인 듯 불안감이 스쳤다.


1987년 회고록은 2006년 미투운동Me too movement, 2015년 빌리지 보이스 폐간을 지나, 2019년에 문학상을 수상한다. 내가 살아본 적 없던 시절의 고닉은 그렇게 2021년 연말에 내게 한국어 번역본으로 도착했다.


내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뉴욕의 거리를 걷는 고닉을 따라 걷는 중년의 나는, 그의 지인들의 소식을 옆에서 귀 기울이듯 읽는다. 그의 부모가 겪은 전쟁과 굶주림과 가난은 잠결에 듣던 내 할머니 어머니의 목소리로 통역된다.


양 팔을 벌려 안아주던 품은 물건을 걷어차고 고함을 맘껏 지르던 가장들을 잊게 해주었다. ‘필요한 순간마다 말없이 알아주는 마음들은 떠나가고 나는 품을 내어주지 못하는 못난 어른으로 살고 있다. 세상이 더 팍팍해진 게 그 품의 부재만큼은 내 탓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헤매고 있는 밑바닥에서는 그 간극이 아주 깊은 골짜기처럼 패어버렸다고.”


고닉이 걷는 방식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지난 시절 이웃들을 떠올리는 마음은 시선이 닿은 자리에 머무는 이들과의 대화로 바뀐다. ‘세상이 이제야 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인터뷰한 때가 여든이 되어서다.


@El_PAIS

A escritora e ensaísta Vivian Gornick durante a entrevista em Nova York. ERIK TANNER


지체된 이유들 중에는 화이트가 아닌 블루 컬러의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선택이 있지 않을까. 여든의 그가 말을 거는 이들은, 어릴 적에도 30대에도 뉴욕이란 공간에서 함께 살고 걷던 다양한 군중이다. 그들은 뉴욕의 풍경과 고닉의 정신을 채우는 모자이크 같다.


단 두 권의 책을 읽고 만난 적 없는 저자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에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언어를 소통 수단으로 삼지만 경험을 통한 진실만을 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보듯 들리는 문장들이다. 변명도 속임수도 없다.


고닉이 자신의 삶을 분석하면 내게도 잠시 내 삶을 관찰해보는 공간이 뇌의 한구석에 열렸다. 그의 시대와 경험과 감정과 기억이 건네는 질문들이 2023년의 현실에서 곧바로 소환되는 순간들은 쓰디썼다.


모순과 부조리와 불합리는 전성기의 욕망처럼 여전하고, 고단하고 지친 모두의 하소연과 비명은 느긋한 산책에 나선 내 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꽃은 보여도 봄이라는 감각이 없다. 이쯤에서 주저앉고도 싶고 차라리 되돌아가고도 싶다.



이 응어리진 쓰린 가슴을 달래주는 건 오직 도시를 가로지르는 산책뿐이었다. 사람들이 계속 인간으로 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반백 가지 방식, 변화무쌍하고도 기발한 그 생존 기법들을 거리에서 보다 보면 팽팽했던 무언가가 느슨해지고 넘칠 듯 찰랑대던 게 빠져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온 신경종말에서 일제히 날을 세우던 거부감이 슬며시 가라앉는 걸 느꼈다.”


걸을 때도 사람들을 보고 관찰하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고닉은 강한 사람이다. 그가 찾아낸 친구들 모두가 걷게 한 힘이 되었다. 나는 아무리 외쳐도 소음처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악몽을 종종 꾼다. 함께 외쳐야하는데 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여성을 표적 삼은 범죄와 차별을 향해.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며 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어있다. 하나같이 몇 백 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 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 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삶이라는 건 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 - 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 - 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최초의 모든 기억은 거기에 있다. 어릴 적 기억은 졸려서 눈 감기 직전 불빛조차 생생하다. 도시를 깊이 사랑한다. 그리움이라는 정서와 웃게 하는 감정의 정체성은 모두 도시에 근원을 둔다.


어디라도 사랑은 피었다 허망하게 지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인류의 구원은 우리가 시시때때로 무시한 우정에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그것 밖에 선택할 수 없는 에너지만 남은 나이가 되어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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