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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ㅣ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외전인데 공들인 외향과 친필사인까지 있는 본격 구성이고, 조각이 궁금하고 애틋했던 <파과>의 독자들의 기대에는 아쉬울 듯 짧은 듯 아마도 적당한 듯한 이야기가 담겼다.
반가운 만연체, 쉼포 쉼표로 이어지는 세 줄 넘는 문장들도 반갑고, 읽다보면 산문시처럼 읽히는 킬러의 10대도 묘하다. 그 와중에 갑갑한 속이 좀 풀리듯 과격한(?) 문장에 후련한 이 위험한 기분은 걱정이다.
1960년대 배경이라 하셔서 그렇게 감안하고 읽으리라 했지만, 살아본 적이 없이 아는 바도 별로 없다. 그러기엔 다소 현대적(?)인 문장들도. 조각의 10대는 한국의 다수처럼 혹독한 수련의 과정이다.
“늘 생각하되, 생각에서 행동까지 시간이 걸리면 안 돼. 생각은 매 순간 해야 하지만, 생각에 빠지면 죽어.”
킬러가 되는 것과, 모든 경쟁에서 타인을 이겨먹는 것은 다른 구조인가... 하는 생각. 이미 강제가 자율로 허용되는 입시체제로 들어간 우리 집 고2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러니까 이 정도를 못 피했다면 자신이 원하던 인재가 아니라 판단하여 눈알을 파낸 채로 이 산에 버려두고 돌아갔을 거라는 뜻인지, 그게 아니라 피하지 못할 것 같았으면 알아서 거리를 조절했을 거라는 얘긴지, 혹은 당연히 피하리라고 믿었다는 뜻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 사람 취급 안 하기로 한 거구나.”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내에서 하루로 다양하지만, <파과>를 먼저 읽으셔야 한다. 파쇄 기술을 익혀 표적을 파과로 만드는 직업이다. 작가의 말은 아주 좋았다. 사전 필수(저만 그런 지도). 구병모 어휘 사전은 좀 더 길어졌다.
* 시취, 환후, 여향, 매조지, 실로, 탄주, 탄착점....
“평생 손끝과 머리맡을 떠나지 않을 시취에 비하면 그나마 덜 직접적이고 비 구체적이며 이름 붙이기엔 어려운 지금의 불가해한 감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삶의 지표면 아래서 내내 여진으로 맴돌아, 그것이 비록 산사태를 일으키거나 교각을 꺾지는 못할 테지만, 최소한 마지막 숨을 쉴 때 찾아오는 완전한 적막 안에서 자신의 탄착점을 찾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