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버즈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9
전춘화 지음 / 호밀밭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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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작가의 책도 처음이다. 에세이가 아니라서 작가와의 거리가 밀착되진 않겠지만, 작가만의 문화와 언어와 메시지가 강렬하게 집중되어 있을 소설이라는 막강한 이야기 수단을 통해 더 오래 기억할 거란 기대를 한다.

 

남한과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계속 조선족이고 그렇게 불리고 그렇게 분류된다. 어디에서도 이들은 소수자이고 어디에서도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어떤 힘듦인지는 경험과 상상 모두를 동원해야 짐작할 것이다.

 

제목이 눈에 띄었지만 읽기가 두려워서 피한 기사 제목에는 선택할 수 있다면 입양 가지 않고 한국에서 살겠다’(의미 요약, 정확한 워딩 아님 주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수자와 경계인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 이상이 담겼을 것이다.

 

조선족은 소위 한국인 외모를 가졌다. 한국어를 사용한다. 외모와 언어라는 식별 동일성을 가졌지만 한국인이 아니라하고 한국에서는 주로 범죄자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한국인들이 조선족에 대해 나처럼 모르고 왜곡된 이미지만 형성한 것이라면, 조선족들이 한국에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사회로 보일까. 다른 외국인들보다 심리적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울까, 더욱 멀까.

 

처음 맛보는 향신료와 식재료처럼 매력적인 문장들이다. 간혹 바로 연상되지 않은 단어들이 있으면 잠시 쉬어가며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게을러서 바로 찾지 않고 읽는 습관 덕분에 불편하지는 않다.


 

표제작 야버즈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단어 뜻을 배운다. 야버즈는 오리목이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인간이 못 먹는 식재료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인들은 닭목을 잘 먹으니 낯설지도 않다.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는 감정은 불안과 우울이 있으면서도 스펙트럼처럼 다른 색으로 번진다. 야버즈를 먹으며, 오랜 대화를 통해, 갈망을 채우는 소비를 통해, 묵묵히 삶의 본질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모든 생명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지만, 살아가는 이유, 목표, 가치, 의미는 각자가 찾거나 만들거나 믿거나 할 수밖에 없다. 색다른 이국적인 그런 재미를 찾던 나는 이번에도 무척 얄팍한 기대에 좀 부끄럽다.


 

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각자의 이유를 계속 만난다. 가진 것보다 가족 모두 무탈한 일상이 중요한, 작은 만족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는, 이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때론 모르고도, 여유가 없이도, 무엇이 되었건 그때를 살게 하는 것을 향해 달리면서.

 


그렇게들 산다. 전춘화 작가의 세계에서는 연민도 거대 서사도 동화도 없다. 씩씩하고 젊다. 덕분에 나는 생각도 읽기도 멈추고 현재를 걸으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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