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미의 심연까지
나카야마 가호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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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다. 라고 쓰고 나니 더 할 말이 없다. 작품 속 표현처럼 모자의 리본이 무슨 큰일이란 말인가. 이유는 몰라도, 타인의 성애유형에 나는 어쩌다보니 무심했고 어쩌다보니 별 가치판단이 없다. 무슨 상관인가. 사물과 사랑에 빠져 결혼도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어쩌다보니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수십 명의 작은 집단 내에서도 갖가지 다양한 욕망과 선호하는 표현방식이 있다는 것을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매주 금요일 작은 파티가 열리면 분장에 가까운 착장과 즐거운 큰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어쩌다보니 (당시 영국에서 유학생에게도 지정해주던) 담당의사도 동성애자였고(본인이 어느 날 얘기해서 알게 됨), 그의 성애 유형이 진료나 치료에 어떤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이미 존재하는 취향을 고쳐라 말아라 떠드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물론 가르기가 사회적으로 이익과 권력을 얻기 위해 어떤 효과를 낳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비열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인 일일 뿐. 사랑을 액화된 생명력처럼 온통 흩뿌린 이 작품 덕분에 백만 년만에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았다.



 

사회적 고민과 저항과 국립국어원의 고민과 2023년에 이르는 역사가 펼쳐진 느낌이다. 이성애 중심 언어와 차별에 민감해진 대학생들의 제안, 수정된 새 뜻풀이, 소위 보수라는 이들의 비난, 재변경, 2020년 이전 이미 미국, 유럽의 여러 나라, 대만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

 

202212월 교육부는 교육 개정안에서 두 단어를 삭제했다. 성소수자와 성평등. 단어를 지우면 존재가 사라진다고 믿는 것일까. 적어도 사회적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는 협박의 기능은 할 것이다. 그러면 구조적 차별을 알아보는 시간도 더 길고 힘들어질 것이다.

 

소설을 읽고 쓰고 있는 이 글은 무엇일까 점점 당황하는 중이지만,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그래서 이렇다, 라고 변명한다. 세상에 단 두 가지 성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성이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사자들이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외부의 제약도 평가도 불필요하다.


 

서로를 안으면 안을수록 우리는 절실해졌다. 순애는 나중에 찾아왔다.”


 

다수인 이성애자들도 모두 다르듯이, 어떤 성애도 동일하게 발현되지도 않는다. 누가 되었건 단정적으로 판단하거나 선입견만 내세우는 건 하지 않으면 좋겠다. 적어도 누구의 시선도 편협할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인정하며 함께 살 수 있기를.


2001 출간, 2023 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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