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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시간 - 여행자의 인문학 ㅣ 타오르는 시간 1
김종엽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친구가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사회학자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공항 등장 장면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모비딕에서 모비딕 만날 때처럼 끝까지 읽어야 (......)을 만나보기나 할 거라고, 그게 또 엄청나게 재밌다고 해서, 너무나 궁금했던 책이다.
그... 그런데, 두꺼운 양장본의 위엄, 머리말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자크 라캉 인용하며 시작하는 책... 이제야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과 더불어 뇌가 타오르는 시간을 보내겠구나. 물론 태평한 독자인 나는 이해 못한다고 고통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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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관광과 여행은 아주 다른 풍경이지만, 순순히 자크 라캉의 표기법 관광/여행을 수용한다. 그보단 한번 밖에 가본 적이 없어 상대적으로 미지의 장소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가 여행의 시작이라 많이 설렜다.
머리말에 놀란 가슴으로 읽은 서론(을 대신하여)에는, 여행기의 의미가 정리되어 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여행기가 아니구나. 사회학자가 쓴 여행을 소재로 한 인문학서가 되겠구나, 점점 예감이 확실해진다. 뱃사공과 짐꾼 신드바드... 스페인으로 가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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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여행지도 도착하지 않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행과 관광의 의미... 2장 (아마도) 여행의 떠나는 이유인 권태, ,결말에 이르면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일상이 시간을 죽이는 권태이고, 관광/여행이 시간을 불사르는 시간이라서 ‘타오르는 시간’이다.
“삶의 연속성을 끊어내서 한때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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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이 시간을 불사르는 시간이고, 여행이(관관 가본 적 없음) 그 불을 잠재우고 쉬는 시간이라서 ‘타오른다’는 의미를 오독했거나 전혀 다른 여행 목적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의 촘촘한 인간관계와 매일의 의무처리사항들을 해치우는 일은 고열에 시달리고 염증 반응을 일으켜서 늘 뜨겁고 아프고 힘든 일이다. 여행은 잠시 서늘하게 편안하게 내게 연결된 선과 매듭을 끊고 풀고 살아보는, 낯선 시공간, 수면 아래의 삶이다.
친구가 왜 모비딕 얘기를 했는지, 7장에 이르러서 깨달았다. 아무리 태평한 독자라고는 하지만, 그 여정에 하이데거, 벤야민, 마르크스, 짐멜, 제임스 티소, 터너, 괴테(색채론), 자코메티, 고호... 정신을 번쩍 깨우는 반가운 난기류를 만난 순간들이 있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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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드리드 도착! 기대하던 ‘여행지’라는, 저자가 장소론적 의미를 추구한 ‘목적지’라기 보다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 직후 ‘집에 대하여’ 사유를 깊게 하신다.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기려고 쓰신 글이 아닐 텐데, 내 웃음코드는 말릴 수 없이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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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 당신이 생각해봐야할 문화적 통찰 가이드북’ 같다. 여행 전에 ‘타오르는 시간’을 보내야 여행 가서 제대로 불사를 수 있다는. 저기... 이 책 2부 있는 거지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하신 이야기도 꼭 풀어 주시는 거지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아직 계획하지 않았다. 탄소배출이 심각한 시절에 속 편히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것인지 계산이 덜 끝났다. 돌아보면 목적이 분명한 비행 - 유학, 출장, 워크숍, 학회 등 - 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꾸준히 일상의 탄소마일리지를 줄이고 관리하면서 정당화할 포인트를 계속 쌓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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