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르트르 vs 보부아르 ㅣ 세창프레너미 11
변광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철학은 철학‘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의지적으로 철학책을 읽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었던 변명 같은 독서의 용도를 벗어나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시리즈의 명칭인 프레너미friend+enemy라는 인간관계의 속성도 흥미롭다. 타자와의 관계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그 양면성으로 지치기 할 때도 적지 않으니까. 다행인건 내 정의는 스펙트럼 형태라는 것,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진폭을 조절하는 게 쉽진 않지만.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는 일은 쉬운 결심, 어려운 지속의 반복이다. ‘결혼’과 ‘생득적 가족’에 이르면 한없이 막막해진다. 모든 결혼은 계약이지만, 연애결혼과 로맨스의 신화에 뒤덮인 관계는 더 복잡하다. 서늘하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다른 이름의 ‘match’라고 생각한다.
1929년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희생이 아닌’ 자신들의 관계로부터 사회적 관계의 이상을 그려내는 실험에 도전했다. 총체적인 교류의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실험이 여전히 실험적이라고 느낄 만큼 세상의 변화는 느리고 갑갑하다. 실은 어느 방향인지도 잘 모르겠단 생각.
20대에는 상상의 재료로 떠올릴 현실 경험이 부족해서 실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숙고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밝힌 내용을 만나니 2023년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지도, 도전하지도,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았나 싶게 초라한 기분이 된다.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과 가치에 따라 산 이들을 소개하는 최선은 사유가 응축된 저서들을 망라하는 것일 터이다. 저자의 총괄적인 저서 소개와 사상 설명들이 이론으로만 남지 않은 그들 삶의 풍경으로 좀 더 입체적으로 가까워진다.
프레너미란 관계명은 둘 다 무척 강한 표현이지만, 이 두 사상가를 이해하기 위해 머릿 속에 그려둔 스펙트럼 위에서, 이들의 때론 친구, 때론 적이었던 관계는 유사성과 동의vs 상이성과 차이로 이해하려한다.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관계의 핵심은 후자 덕분일 것이다.
‘친구’에만 공감하는 태도는 2203년 현실의 위협으로 기능한다. 오히려 차이를 가진 타자를 통해 자신을 비로소 고유한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점이야말로 모두를 본원적인intrinsic 존엄한 존재로 만든다. 물론 관계의 평가란 늘 해석의 문제일 것이지만.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반세기를 지속한, 사회적 실험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사적 실험은 측정이 어려운 지적인 용기였다. 역으로 이동하며 추적하고 분석하고 전체 그림을 파악하려는 설정이 영화적 상상력처럼 재미있었다. <Les amants du Flore>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