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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종말 -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처음 맞는 번아웃*은 못 알아차릴 수도 있다. 전형적인 병증이 보이는 질환이 아닌 상태라 그렇기도 하고, 극적이라기보다 여러 날 진행되는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아주 섬세하고 고기능으로 작동하지만 경고를 위해 정밀하게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 번아웃burnout :
- 모든 것이 소진됐다는 뜻.
- 무기력, 피로, 우울, 좌절 등이 대표적인 증상.
- 1974년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처음 만든 개념
-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안에서 번아웃증후군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 직장 스트레스’로 규정.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관리해야 하는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
의학서가 아닌 내용들이 내게 필요했던 관점이라 공감하는 분량이 많았다. 흔히 번아웃이 업무로 인한 탈진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일의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상태’라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친다. 하고 싶은 일이나 잘 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모를 것이다.
“넓이(모든 사람이 약간은 번아웃을 겪는다고 느낀다)와 깊이(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번아웃 때문에 더는 일을 할 수 없다)의 필요성 사이 균형을 잡으려면, 번아웃이 상태가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
통증인지 고통인지 구분이 어려운 감각이 어쩌면, 나는 언어를 찾지 못한, 저자가 한 이 내밀한 고백서의 문장들로 진단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플 때는 “많이 아프지”하고 공감하는 한 마디가 진통제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물론 저자의 관점이 사적 고민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무인도도 아니고, 우리는 모두 사회적 인간이며, 대부분은 사회, 문화, 역사, 정치 등등의 시스템이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삶의 희노애락을 야기한다.
비정규직 증가, 인간의 인적자원화, 비용화, 근로조건 악화가 스트레스를 증가시켰다는 지적은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이나, 남의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업무 외적 노동량(감정노동 등)과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 한국이다.
“모든 노동자는 잠재적인 번아웃 환자다. 이 역시 연대감의 원천이자 현상황을, 일로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바꾸는 데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번아웃이 올 때까지 일했다는 건 자랑할 일도 인정받을 일도 아니다. 근절되어야할 병리적 현상이다. 성취와 목적 지향적인 삶 이외에는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워하는 사회에서는 일과 삶과 자신을 동일시하기가 더 쉽다. 생존에 필요한 만큼, 혹 재밌어서 일 하는 건 불가능할까.
“삶을 얻는 것은 반드시 공동의 노력이어야 한다. 삶만큼 큰 것을 혼자 힘으로 얻을 수는 없다.”
나이가 드니 체력이 떨어지고 지연스럽게(?) 오버페이스를 할 수가 없게 된다. 한편 다행이고 다른 한편 기억력과 효율성이 점점 떨어져서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다시 문제는 일의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상태’이다. 이상주의를 마저 내다버려야 할 때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