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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의 영화비평
홍은화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1월
평점 :
제대로 인지를 못하고 있다가 문득 변화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서점 방문보다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사는 횟수가 오래 전에 많아졌다고. 유학 중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확실한 예외였는데, 예외가 일상이 된 셈이다.
또 하나, 나는 영화관에 가서 보는 것을 본래적인 영화감상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OTT는 여전히 예외적인 상황이거나 의미나 가치가 덜한 작품을 구경하는 용도랄까. 물론 현실에서 도저히 다른 방법으로 만날 수 없는 영화를 찾으면 기쁘고 감사하다.
매일 점점 더 짧아지는 생과 매번 아쉬운 주말에 영화를 보러 나가는 일은 다소 낭비적일 만큼 호사스럽게 시간을 향유하는 행위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시간 - 준비, 이동, 감상, 귀가 -을 최대한 즐기려 노력한다.
어제 반드시 봐야할 영화를 보았고, 오늘은 책을 읽다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보았다. <플로르의 연인Les amants du Flore>인데 음... 바로 감상이 어려워 헤매다 영화비평 책으로 옮겨왔다. 10부터 좋아한 천재작가 메리셸리의 캐릭터 이름이니 반갑기도 했다.
“영화 비평이 필요한가”
영화 리뷰와 비평의 차이를 배우며, 책이든 영화든 비평을 대체로 거부하거나 외면해 온 것을 기억해낸다. 감상자의 의견인 리뷰는 무해하나, 수강신청하지 않은 강의 같은 비평은 불편했다. 특히 구매 옵션 없이 작품과 묶여 한 책에 실린 비평, 누가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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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와 내러티브에 관심이 많은 영상 감상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엉망인 좋은 영화는 있을 수 없다. 이 책의 내용 중 고전적 내러티브와 관련된 설명이 영화학에 지식이 없음에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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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구분이 있어도 무방하나 위계적 시선은 불편하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 중에도 자기모순적인 이도 없지 않다. 순문학에 대해 자신이 한 찬사를 모두 잊은 것인지, 스티븐 킹이 팬이라고 하는 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인간적이긴 했다.
어쨌든 이 책에서 나라면 공포/호러 장르에 분류할 생각을 못한 감독들이 보여서 놀랍고 흥미로웠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하긴, 그 영화를 보고 어찌나 단단하게 사로잡혔던지 한참을 괴로웠다. 지금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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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논문 주제로까지 잡았던 ‘시간’, 저자는 ‘영화적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시간에 대한 사유는 물리학의 영역을 피해갈 수는 없다. 21세기에 천착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들이 불러오는 기억 속 장면들에 정신이 잠시 우주로 날아갈 듯하다.
“문학서사의 종적 시간을 흐트러뜨리고 중력의 시간성을 벗어나 기억, 꿈, 우주의 영역을 영화적 시간과 유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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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후회가 된다. 주말 저녁에 현실의 시간을 살지 말고, 시간의 순서를 흐트러뜨리는 영화 속 세계에 머물 것을. 심지어 영화는 아무도 이해 못한다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체험하게도 해주지 않는가. 그만 쓰고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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