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소풍과 귀천 웰다잉 총서
임정희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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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철학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들 발표를 한참 듣던 담당교수가 너희들은 아직 실감할 수 없구나하며 웃었다. 그땐 그 말을 실감할 수 없었다. 이제 그의 나이와 비슷해지니 죽음이 실감날 때마다 마음이 지잉... 울린다.

 

늘 기억하고 그래서 깨달은 자처럼 살진 못한다. 그래서 두렵다.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았다고 후회하면서 죽어갈까 봐. 이 두려움은 목표와 성취가 부족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웃음과 어울림이 부족할까 싶어서.

 

13인이 공동집필한 책이라 묵직하다. 죽음이 가벼울 리가 없지. 인간이 살고 만들고 경험하는 아무 곳에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관련 소재들이 다양하다. 많은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참 좋다. 명화, 영화, 그림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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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바라는 멋진 어른이 못 될 듯해서 이런저런 작은 계획들을 세웠다. 이를 테면, 매일 저녁이 마지막 저녁이라고 생각해보는 것, 화도 욕도 부드럽게 삼켜진다. 뇌가 말랑해지고 말이 부드러워진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을 좋아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설명이었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 죽어가는 과정을 경험하다 죽은 상태가 된다는 것. 그러니 잘 죽고 싶으면 잘 살아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벌떡 일어나서 일요일 오후의 산책을 나갔다. 피할 수 없는 미세먼지를 잊고, 두려움을 잊고, 걸으며 호흡을 아주 깊이 했다. 집중이 잘 안 될 때도 있는데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데워진 몸의 피부는 서늘하게 또 식어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새해에 새로 한 메모가 떠올랐다. 크게 웃게 해줘서 좋아하는 저자인데, 무척 차분한 문장들이라 인상적이었다.

 

사는 일과 죽음과 폐허와 사라짐과 모든 단어들을 붙여도 잘 어울려 주는 사유다. 고마운 기분으로 다시 기록해둔다. 비록 내일 다시 후회하게 되더라도 오늘 저녁엔 다시 말랑하고 부드럽게 마무리 해야지.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고,

과거에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버렸다고,

현재는 상처 없이 주어진 말끔한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과거의 잔해라고,

그러나 그 현재에 누군가 살고 있다고,

폐허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폐허를 응시할 수는 있다고,

폐허를 응시했을 때 인간은 관성에서 벗어나

간신히 한 뼘 더 성장할지 모른다고,

성장이란 폐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폐허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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