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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카타콤
이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평점 :
웃다가 몸이 얼어붙게 되는 <기생충>이 고발한 반지하란 주거와 한국 사회의 계급 실태는 이후로도 드물지 않게 매해 비슷한 비극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제목을 보며 그 반지하가 완전히 어두운 도시 아래로 내려간 건가 싶었다.
“문명은 죽음 위에, 도시는 무덤 위에.”
체력도 기분도 카타콤에 들어간 듯한 목요일, 어두워진 하늘을 확인하고 끝까지 몰입해서 읽는 시간이 위안이 되었다. 참담한 이를 부축하려는 다정한 작가를 느끼며, 가감 없는 날카로운 문장들에 놀라며. 지하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의 그늘은 더 짙고 어둡다.
“절망은 오늘의 노력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일말의 희망조차 불러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왔다.”
물리적으로 도망갈 카타콤이 없어서 혹은 있지만 못 찾은 이들은 심연에 깊고 어두운 지하를 파기도 한다. 외부 세계의 누구도 모르는 그 곳에 떨어지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지도. 강남역의 그 구멍은 해리포터의 플랫폼과 달리 미래의 것이 사라지고 멈추는 세계의 입구이다.
기능하는 인간human 'doing' 노릇을 멈추고 혹은 떨어 나오고, 그래도 남은 목숨을 어쩌지 못해 그저 있기로 한 이들이 어쩌면 더 인간인지도human 'being' 모르겠다. 그저 있는 것, 존재보다 더 치열한 건 없다고 생각하다가 정말 존재만으로 충분한지 의심하는 요즘을 산다.
작품 인물들의 면면이 내 기분의 지도 같기도 했다. 이름조차 모르는 주인공에게 애착이 생기려했다. 죽은 듯 보였지만, 지상에서의 습속을 모두 버린 듯도 보였지만, 사람이 모이면 비슷한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하와 어둠은 모든 갈등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게 한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만이 절대 목표인 것처럼 모두가 치열하다. 어쩌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잊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상에서 아팠던 것, 믿었던 것, 꾸었던 꿈. 어쩌면 기능하지 않는 존재로 사는 어둠 속에 산 세월은 인간다움과 인간성을 밝히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이 아이들이, 이 예쁜 아이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 지상이라는 것에, 절망했다.”
지상에서도 사는 동안은 이름도 목소리도 얼굴도 묻히고 가려지고 지워지다 죽어서야 기록되는 이들이 있다, 많다. 좀 더 참혹하고 가차 없는 시절에는 그 이름조차 감춰지고 외면당한다. 물론 작가의 '어둠'이 나의 단견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끝내 온기와 희망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오는 것은 나오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쉬웠다. 내려왔던 길과 반대로 하염없이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길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