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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당신의 시간
김주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2월
평점 :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아주 잘 듣는다. 친구가 가자고 하면 당연히 강남 간다. 정도가 심해서 도리어 거의 모든 아는 이들에게 걱정을 시키는 형편이다. 그러나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믿지 않는다면 그건 무슨 삶인가.
이 엉뚱한 이야기는 제목 때문이다. ‘그저 좋기만 한’ 사람과 시간에 대해 한참을 추억 속에서 혹은 다듬어진 상상 속에서 즐거웠다. 심리상담을 하고 언어발달을 지도하면서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이력도 흥미롭다. 가만 생각하니 나는 전공(들)을 빼면 달리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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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영향이었는지 부모님 발톱을 깎아 보리라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어머니에겐 단호하게 거절당하고 아버지 발톱을 하나 깎기로 양해 받았다. 원래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덕분에 아버지 발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나는 발도 아버지를 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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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메리 올리버 시집을 읽다가 다른 시집을 한 권 더 보았다. 제목이 천 개의 아침이었다. 천 개는 삼년이 채 안 된다. 천 개의 아침을 사진기록으로 남길까 하는 프로젝트를 생각했다가 얼른 스스로를 뜯어 말렸다. 몇 년에 걸쳐 글을 쓰는 작가들이 새삼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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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라는 단어는 어릴 적 배운 여러 학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다시! 가 중요한 반복만이 배울 길이었던 것들. 엄지발톱이 빠져 울었던 발레도, 손가락이 너무 아팠던 첼로도, 배우는 동안 다시! 다시! 를 천 번도 넘게 들었다. 그래도 음악을 만나는 일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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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글을 쓰다 ‘유영’이라는 단어가 필요했는데 생각이 안 나서 괴로웠다. 수영을 즐긴 지가 너무 오래되어 관련 단어들이 다 사라진 느낌이다. 어디 실내 수영장이라도 갈까. 전혀 같지 않은 물이지만. 미세플라스틱을 파도로 토해내고 내뿜는다는 바다 상태가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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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속에 갇힌 별, 바람 없는 바다, 터질 듯한 침묵, 뚜껑 덮인 평정... 젊은 한 때는 체력이 좋아서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혼자라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늘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무척 건방지게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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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가만... 가만... 기억을 뒤져봐도... 작년에 우산을 들도 걸으며 비를 만난 기억이 안 난다. 맙소사... 그러니까 비가 오면 홀랑 차를 타거나 어디 들어가 있거나 그렇게 살았나보다. 우산을 꺼낸 기억도 안 난다. 우산 안부를 살피러 가봐야겠다는 생각.
무척 슬픈 구절이다. 어디를 가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렇게 긴 여행에 왜 우산을 데려가지 않았을까. 돌아가신 분의 물건을 몽땅 처분하고 없애는 풍습이 정말 싫다. 생전에 할아버지께 부탁드려 돌아가신 후에 두 가지 물건은 꼭 내게 남겨 달라 말씀 드렸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보니 누군가에게 속했던 물건들은 어쩌면 그 누군가의 부재를 이유로 잠든 상태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 그럴 지도 모르겠다. 늘 나보다 현명한 옛 사람들이 같이 태워지고 같이 태어나라고 물건을 함께 화장시켰을 지도.
하루 숙면의 대가는 다음날의 불면이 되는 날이 적지 않다. 무슨 형벌인가 싶지만, 책이 있으니 그럭저럭 산다. 새 책을 읽는 시간은 그저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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