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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이후의 어른 -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우리들의 대화
모야 사너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3년 1월
평점 :
인간의 수명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배우기엔 너무 짧고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에는 너무 길다.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늙고 있다는 자각이 든 그 순간부터, 종종 당혹과 후회가 번갈아 방문하는 감옥에 갇힌 듯도 하다.
치열하게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는 사유와 성찰이 있고 삶이 닮아가야 부끄러움이 덜할 텐데,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자기연민과 감정놀이 수준에만 머물고 있다. 생각할수록 ‘세상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게 된다. 정보지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오래 전 할아버지께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 것 같은데 죽을 나이가 다 되었다고 하셨는데, 으레 하는 말씀인줄 알았다. 지금은... 나는 죽기 전이라도 알게 될까 싶다. 어른이 되고grow up 싶었는데 그저 늙고만 있으니grow old.
각자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도 다양하겠지만,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것이라 할만한 생각, 세계관, 시야를 가지고 필요할 때 주장, 설득, 변론하거나speak 'up' (for), 때론 한번뿐인 삶을 걸고 나서서 행동하는 것stand 'up' (for)라는 심상을 품었다.
태어나서 누워 버둥거리다 제 발과 다리로 우주의 중력을 거스르고 일어서는up 과정이 성장이고 똑바로 서서 머뭇거리거나 변명 말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면면에 (영어지만) 같은 단어가 쓰인다는 것이 해석하고 수용할 의미가 있었다.
참고 배우고 힘을 키워야하는 시기에 약처럼 씹어 삼킨 준열한 글들은 그 당시도 버틸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시간과 애씀이 어떤 형태의 힘이 되어 지금도 휘청이는 각도를 조금은 줄여주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간절히 붙잡고 있다.
오래 되물은 질문들을 정확한 의문문으로 제시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탐구해간 이 책이 허청거리는 새해에 의지가 되었다. 종이책을 꽉 붙잡고 내용을 읽어가는 시간은 늘 위로가 된다. 이제(?) 30대 중반인데 이론과 사례도 풍성했다. 기록 방식과 전달력도 유용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 대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추측하는 일을 굉장히 잘 해내게 된 것 같다. (...) 그건 편안하지만 위험한 일이었고, 또 다른 종류의 탈주로이자 덫이었다.”
‘자기다움’을 모른 채 어른이 된다거나 성공한다거나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어리석게 생각하는 점을 아프게 짚어주었다. 불확신의 상태가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라는 위로도 빠트리지 않았다. 사회학보다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분석 틀로 활용하였다.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필사적이었던 나는 진짜가 되는 경험,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중요한 경험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줄 서기가 아닌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전해주니, 어느 한 모서리 누구나 설 자리가 있다고 말하는 듯해 안도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뭉클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어른처럼 보이는 페르소나를 떠올린다. 그것은 견고하고 진짜같이 보이지만, 모조품처럼 믿음이 안 간다. 그런데 그것이 은폐하고 있는 건 뭘까?”
마지막(죽음, 정지)까지 평생 어른이 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상당히 두려운 제안이 뜻밖에 기분을 고양시킨다. 결국엔 나도 부끄럽고 타인에게도 민망한 한 인간의 성장 수준일지 모를 일이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마감시한이 없으니 평생 동안 해보면 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