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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철학 - 거짓 세상의 파도 위에서 철학으로 중심잡기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재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2년 12월
평점 :
어째서 ‘거짓말’은 ‘거짓’이라는 오명을 가지고도 득세할 수 있을까. 어째서 저토록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할까. 왜 조롱당하거나 비난받지 않고 유통될까. 어째서 저렇게까지 파렴치할까. 몰상식한 겁박과 혐오는 왜 돈이 되는가.
단문 세 줄을 적어 나가는데도 두통이 둥둥 재발되는 것 같아 겁이 덜컥 난다. 비염 악화로 하루 종일 숨을 제대로 못 쉬니 모든 게 귀찮다. 인간은 몸이다. 존재는 몸이다, 뇌도 몸이다. 정신 따위 하찮고 모호하다.
자유를 추종하는지 혐오하는지 자유를 확대하자는 건지 없애자는 건지 기회만 되면 자유를 외치면서 행동은 정반대인 권력 하에 사는 시절, 먼 곳의 철학자는 자유의 본질에 대해 어떤 질문들을 던지는지 읽으며 견뎌 본다. 호흡이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바라며...
- 자연법칙과 사회계약에 의해 수동적으로 부여받은 자유
- 능동적으로 부여한 자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들을 위해 스스로 헌신할 수 있는 자유
- 어떻게 자신과 타인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기대와 희망 없음의 절정기로 맞은 새해, 지인들의 ‘가망 없다’는 말에 더욱 무기력해진다. 애쓰는 분들을 모욕하는 일일까 가능하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데, 해시태그와 후원으로 사는 매일이 갑갑해서 미칠 듯하다. 이 책에서 찾고 싶은 건 실천 철학이 제공할 저항의 무기이다.
오래 전 심리학이 참 다정한 말도 하는구나 싶었던 건, ‘거짓말이 wish-fulfillment’라는 표현이었다. 바라는 바를 말하는 거짓말. 짠했다. 그리고 그 거짓이 필요했던 모두에게 바라는 바가 현실이 되길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문제가 되는, 욕설과 막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 거짓말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저도 아는 허위를 대중에게 믿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들이다. 그래도 철학자답게 기본부터 차근차근 상세히 살피는 내용을 읽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따라가다 보니 마침내 거짓이 진실과 뒤섞인 현실에 도착했다.
- 거짓말의 반대 개념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진실성(truthfulness)
- ‘진실한 거짓말’ :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기를 바란다.
- 진실성이 없는 여러 현상들 : 진실스러운(truthy) 신념들만 존재하는 트루시니스(truthiness), 진실에 무관심해 보이는 개소리(bullshit)
누구나 모두가 매일 늘 거짓말한다, 트럼프 말고도 거짓말쟁이 통치자들은 많다, 정치와 국익을 위해서 통치자는 속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민은 거짓말을 당할 권리가 있다, 등등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거짓’ ‘거짓말’ ‘기만’ ‘속임수’가 기본이고 자연스러운 조건에서 우리는 절대 살 수가 없다. 거짓말로 무슨 소통과 신뢰가 가능할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거짓기반 위에서 무엇인들 가능할까. 점점 더 믿을 수 없어지는 세상은 다 망가질 것이다. 필연적으로.
거짓은 여전히 변칙이고 반칙이고 예외이고 지양의 대상이어야 한다. 범죄로 이어지는 거짓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 인간 조건이자 생존 조건이다. 영민한 철학을 충분히 소개할 수가 없다. 함께 읽으시는 분들이 많으면 ‘진실로’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