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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 ㅣ 세창클래식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동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철학자 니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새해 아침놀과 함께 완독하고 싶었다. 철학과 결심과 의지가 충분하지 않은 나는 계기와 기회와 핑계 삼을 거리들이 무척 도움이 된다. 발명품이긴 하나 새해라는 약속도 그렇다.
이해인 수녀님 시를 읽으며 ‘명랑하게’ 힘을 내어 보자 했는데, 첫 번째 작심삼일이 될 것 같다. 어째서 이토록 우울할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런 듯 쓸쓸하고 적막... 메리와 해피를 전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에는 애도하지 못한 여전히 출혈 중인 참사가 있다.
문학과 영화의 경고들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불안이 심하다. 니체는 “미리 걱정하는 사람들의 소모적인 상상력”에 대해서도 (잠언 254) 지적했다. 미리 괴로워하다 정말 일어나는 순간에 이미 지쳐 있을 거라고. 나는 분명 거듭 지치고 지치고 지칠 것이다.
팬데믹에 기대했던 깔끔한 마무리와 뉴노멀은 오지 않았고, 멈추지 못한 전쟁만 계속 된다. A형 독감에 순차적으로 걸리는 가족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폭증하는 전염병들. 겨우 몸은 대략 회복하고 정신은 좌절하는 새해 같지 않은 2023년이 시작되었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어휘가 확장될 거란 기대도 순진했다. 사유가 언어라면 순서가 틀렸나 싶기도 하다. 단어가 먼저, 생각이 먼저? “우리는 모든 순간에 바로 그 생각만을, 즉 우리 손에 주어진 단어들에 잘 어울리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257)
“오만함이란 연출되고 아첨하는 긍지에 지나지 않는다. (...)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위선이며 동시에 대부분 실패한 자들의 위선일 뿐이다.” (291)
“뭔가 하고 싶은 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자는 결국 분노를 터뜨린다.‘세계 전체는 몰락해야 한다!’ 이런 끔찍한 감정은 질투심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형식이다.”(304)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때에만 기쁨을 즐기는 그런 종류의 도덕주의자들은 (...) 잔혹한 만큼 초라하기만 한 그들의 즐거움은 오로지 이웃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있으며, 그러면서 또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늘을 꽂아 그 이웃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데 있다.”(357)
“자기가 지배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 거리낌 없이 고상하게 거만을 떨거나 무소불위의 화를 내도 되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항상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내게는 긍지에 찬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잠시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넘어서기 위해 (...) 한 마리의 개를, (...) 한 명의 친구를, (...) 한 명의 여성을, (...) 하나의 당파를, (...)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한 시대 전체를 필요로 한다.”(369)
많은 문장들이 니체가 지금 여기 현실에서 어딘가에 투고한 내용 같이 읽힌다. 그 익숙한 오독에 위로받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삶은, 지구가 멈추지 않는 한 쉴 틈 없이 사는 것이고, 그로 인한 고됨보다는 실은 심장이 멈출까봐 더 두렵다.
3권부터는 편하게 읽었다. 기존 ‘진리’ ‘본질’ ‘필연’ ‘의미’ ‘이유’ 등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걸 배워서일까. 당시 니체는 짐작보다 외롭고 힘들었겠다. 늘 바라고는 있지만... 어떻게 내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겠는가.
아침놀 빛이 슬퍼도 조금씩 힘을 내자. 매일 몸을 움직일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