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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 - 가르치며 배우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2년 12월
평점 :
‘인간’으로 사는 일이 형벌인가 싶을 때도 있고, 죄책감에 비참해지기도 하지만, 신비롭고 뿌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공헌한 건 없지만, 어쨌든 동료로서 ‘인류’가 상상하고 생각해낸 현실에 없는 품격 있는 생각을 만날 때 그렇다. 그 중 하나가 ‘평등’ 개념이다.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현실에 없는 것들을 기본개념으로 삼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면적이 없는 점과, 길이만 있는 선, 높이가 없는 면을 상상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고 계속 배웠던 물리학 이론은 현실의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평등도 그만큼 신기하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개념이다. 어느 두 개체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평등이 필요하다. 평등이 적용되는 사회와 국가에는 운에 따라 결정되는 차이들을 채워서 누구도 부당한 불이익에 좌절하지 않도록 하자는 다정한 정책들이 존재한다.
쉬울 리 없다. 운 좋게 가진 행운이 중요하고 차이를 좁히기 싫은 이들의 저항은 거세다. 운이 좋았다는 건 여러 형태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니 막강하다. 인간의 수명으로 가늠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느린 속도이나 방향은 분명하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계속 변해갈 것이다.
책 속에서 어려움과 힘든 이야기들을 만나 실망도 좌절도 아닌 웃음과 감동과 용기를 배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면 외로워서 찌그러들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단단하게 멈추지 않고 애쓰는 분들의 존재가 가장 든든하다. 심지어 여러 번 크게 웃기도 했다. 힘이 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뒤 평소엔 부드럽게 넘어가던 상황에도 무언가 목에 ‘탁’ 걸리게 되었지만, 그것은 불편함 속의 진실을 보게 하는 용기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초능력도 마법지팡이도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성공비법(?)은 계속 시도하고 도전하며 형태를 만들고 자료를 남기고 다듬어 가는 과정뿐이다. 모든 것이 과정의 연속이니 실패란 없다. 그날 할 수 있는 당시의 최선을 다해보고, 다른 날 다시 시도할 힘을 만든다.
“나는 말 못 할 경험들을 이미 겪은,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많은 여성과 어린이에게도 치유와 안전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숭고하고 어려운 일이다. 일상을 이어가는 고됨을 감당하는 것도 변화를 위해 노력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도. 벼락치기, 한탕주의, 수퍼히어로를 믿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애쓰는 분들이 더 널리 많이 알려져서, 절대 혼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에게 교실은 두려운 놀이터이자 일터였고, 조용한 시위의 현장이었으며,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살게 하는 일상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욕설을 감당하는 직업이 선생님들이지만, 월급 이상의 일을 하시는, 때론 기꺼이 감당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실과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사회라도 아무 희망이 없다. 힘껏 응원한다. ‘연구와 실천’이라는 이상을 이루어내고 계신 귀한 기록이다.
“어쩌면 삶이 너무 슬프기만 한 어떤 존재도 그 손을 붙잡고 ‘우리’를 발견하며 자기를 사랑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