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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퍼즐 맞추기 -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 ㅣ 맞불
이현정.하미나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평점 :
편지를 나눠 맞불을 지핀 두 분의 전작들을 읽었다. 한 책에서 만나 뵐 거란 생각을 못해서 기쁘고 반갑다. 오늘은 이 책을 의지 삼아 존엄하게 살아본다. 어느새 잊고 만 깊은 슬픔, 내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 외면해버린 슬픔, 공감 대신 외면한 고통, 너무 느슨해진 연대를 안전거리에서 꺼내본다. 나의 송구영신에는 반성反省 - 되돌려 살핌 - 의식이 필요하다.
“돕고 싶지만 도울 수 없는 순간을 자주 만나셨을까요”
10대, 20대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복약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진단명은 같아도 겪는 내용은 다르다. 자신만 아는 고통을 어떻게든 표현하면 알아듣는 이가 있다는 것은 치료의 출발이자 희망이다. 의료진단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고통이 다 그렇다. 당사자가 들여다본 고통의 실체를 타인이 이해하려는 애씀의 기적이 사람을 살게 한다.
“자신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정확하고 말끔하게 표현하고, 가장 적합한 위로를 건네고 아무도 상처 받지 않은 과정이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 알고 느끼게 된다. 내 얘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와 진심을. 당장 엉망이 되더라도 듣고 있다는 것, 상대도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었다는 것.
그런 의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생략되고, 저지되고, 도리어 가해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상처를 깊게 만드는 일에 권력이 작용하는 장면을 우리는 거듭 목격하며 살았다. 살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혐오하고 싶지 않은데 ‘그’ 혐오를 불같이 혐오하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지식인의 역할은 고충이나 아픔을 보듬고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할 수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대의 행동, 이력, 태도...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고 기록으로 남은 반복되는 선택이 진짜 정체라고 배운다. ‘마음 가는데 돈이 간다’는 말은 농담도 자조도 아니다. 정치인이 진심으로 현실화시킬 정책에는 반드시 예산과 인력보충이 있어야 한다. 아니라면 거짓이거나 헛소리다.
“관찰”
올 해는 어떻게 봄을 빠져나와 여름, 가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왔는지 몹시 흐릿하다. 척추가 뒤흔들린 충격 같은 선거 결과가 있었고, 현실은 더 구체적으로 참담해져갔다. 이제 겨우 7개월 남짓이다. 누가 더 절망했는지 모를 일이나, 위로를 구하기가 무색하게 주변의 많은 이들이 깊이 절망했다. 책 속으로 도망가서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 외에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고 건강한 자아 경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크게 애쓰는 대신 생각만으로 지쳐서 절망한 깜냥이 작은 나는 직업에 대한, 직업을 통한 기대와 노력을 포기했다. 하지만 ‘밥벌이’를 최대한 무심하고 스트레스가 적은 방식으로 살자란 결심이 무색하게 매일이 고단하다. 지난 주 업무 일정은 다 끝난 셈이고, 심신은 엉망이다. 이렇게 해를 거듭해서 계속 살아야 한단 말이지..
그러니 사람, 삶, 세상의 아프고 어두운 곳을 밝혀보고 연구하고 도움이 될 방법들을 찾고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분들이 빛나 보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아직 안 망하고, 눈앞이 환해지는 소식들, 조금 숨쉬기가 편해지게 변한 세상이 이런 분들이 애쓴 기적이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에 감사하며 잠시 정신을 추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