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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방주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평점 :
단편소설만 줄 수 있는 설렘 중 하나는 하루 하나씩 맛있게 읽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계획만 그렇고 참지 못해 덮은 책을 펼쳐 다 읽어버리는 만행도 자주 저지른다. 일곱 편이니 7일간 즐겁자고 결심했으나...
연말에는 대개 몸은 지쳐있고 생각은 복잡하고 감정은 들쑥날쑥 할 때가 잦다. 어둡고 추우니 노안은 더 흐려지기도 한다. 그럴 땐 길지 않게 집중해서 단편 한 작품을 읽는 것이 침잠하지 않게 돕는 치료행위이기도 하다.
아주 좋아하는 SF와 블랙코미디의 어울림... 읽기 전부터 기대가 높이높이 치솟았다. 더구나 의미가 없다는 존재도 우연이라는 먹먹한 과학적 팩트의 시절, ‘존재의 이유’에 대해 들려줄 문학을 만나는 일은 상당히 뭉클했다.
‘객관’이라는 것도, 고정된 현실도 없다면, 오히려 존재하는 동안 각자의 이유와 의미를 찾고 간직해도 괜찮지 않을까. 단단해 보이지만 허술하기도 하고, 외압으로 가해지면 엄청나지만 안전망으로는 부족한 사회와 시스템...
작가는 사회학 연구처럼 자료 조사를 했나보다. 묘사된 풍경 속에는 르포처럼 느껴지는 숨찬 현실이 가득했다. 오래 전 어느 세미나에서 들은 내용들이 불쑥, 툭, 요즘 현실로 나타난다. 오해였으면 했던 크고 작은 비극들이 모두 현실이 되는 두려움...
📝 돈이 든다, 돈 때문이다
문 밖(지구 밖)에 버려둔 사람들, 더 많이 가져서 이 모든 위기에 더 많은 책임을 가진 자들이 정한 이방인의 경계... 유기화합물 우주선, 자동화 공장, 대멸종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보험사와 투자사를 운영 중이라는... [타이탄의 날]
📝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표제작 [환영의 방주]는 제목 때문에 성탄절에 골라 읽었다. 짐작과는 전혀 다른 전개라 흥미롭고 두근거렸다. 무책임의 극단적 인간 유형을 만났다. 스포가 될까봐 스토리 소개를 하지 않겠지만, 이런 완벽한 절망이라니... 현실에선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너무 두려웠다.
📝 뭘 할 수 있었을까?
[번아웃]은 현실의 형편들이 겹쳐져서... 속상하고 아프고, 번아웃 정도면 양호한 노동환경에 정치 판단에 결국엔 화가 났다. 너무 이상한, 현실이면 안 되는 사고들이 일어난다. 고용을 꺼리는 운영방식, 충원하지 않고 기존 직원들이 과로하게 만드는 학대가 큰 원인이다.
다치거나 죽지 않기 위해 파업을 하면 이기적이라는 소리나 듣는다. 그렇게 회사든 시스템은 다시 돌아가고, 울던 사람들은 숨쉴 틈 없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이런 방식으로 살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가볍게 출발한 것 치고 결과물이 꽤 무거워진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가볍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날카롭지만 분명 흥미롭고 재밌고 놀랍고 통쾌하기도 한 작품들인데 쓸수록 글이 가라앉는다. 사려 깊은 작가의 말로 독자의 변명도 대신한다. 각각의 단편이 장편이었더라도 여전히 즐겁게 읽었을 것이다. 일곱 편을 다 읽어버려서 섭섭하고 아쉽다. 다음 출간 소식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