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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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던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흔들리며 인간으로 사는 일에 대해 조심스러워질 수 있었습니다. 정답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살다 보니 질문의 의미가 사라지기도 하고, 질문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에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덜컹하며 놀란 제목으로 만난 이 책을 봄에 만나, 중복 여름에 다시 한 번, 가을밤하늘과 한 번 더, 그리고 12월에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뇌가 타버릴 듯 화가 치솟던 순간들이 많았던 2022년을 함께 작별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계속 물을 수밖에 없었던 허망한 질문들과도 작별, 뜨겁게 들끓던 기분과도 작별, 불쑥 흐르던 눈물과도 작별, 욕쟁이 할머니가 될 뻔한... 막말과 욕설을 꾹꾹 삼키던 아슬아슬한 순간들과도 작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차곡차곡 정갈하게 장기기억화 시키고 나머지와도 작별...

 

몇 년 만에 걸린, 121일에 시작되어 아직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은 감기몸살은 겸손하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족, 친지, 지인, 친구들의 확진 소식도 몸이 부서지고 열이 오르고 입원을 하게 되는 다른 감기 몸살 소식도 듣습니다. 올 해도 우리 모두 참 고단했습니다.

 

기계의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우주에선 자아도 과거도 미래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전히 시작점을 모르지만, ‘빅뱅이라 불리는 그 시작조차, 이전 우주의 수축이 먼저 있은 후였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과거는 미래였을 것이고 사라진 존재들의 현재가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유일한 실제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현재, 찰나의 존재입니다. 어디서 왜 어째서 생긴 것인지 모를 의식 탓에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기쁘고도 서글픕니다. 집착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하고 불행하고 정말로 모두 필요해서 진화한 것일까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모든 것은 재활용되고 공유됩니다.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멀지 않은 이전에 서로의 일부였을 나와 나 외의 모든 존재들, 어쩌면 최초의 순간 모든 함께 태어난 존재였을 우리 모두, 어쩌면 다음 생에 함께 다른 존재로 결합될 지도 모를 존재인 모든 존재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과학이 가르쳐준 지식 덕분에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2022년 제 결심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원한 작별에 이를 때까지 남은 시간을 다시 무엇으로 채울까요. 저는 조금 더 오래 고민하는 새해를 맞으려 합니다. 모두들, 미래와의 조우가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고, 그럴 리는 없다고 말이야. 그 덕분에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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