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퀘이크
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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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량을 기준으로 삼으면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인간의 약속은 임의적이라 아쉽게도 내일을 새해의 첫날 11일로 삼지 않았다. 0을 몰라 잃어버린 BC/AD 사이의 1세기와 그레고리력을 만들 때 잃어버린 10일처럼, 거대한 권위로 인류 전체의 시간을 수정을 할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다.

 

시간이 발명품이고 실재하는 건 공간이라는 걸 배운 이후부터 공간(우주)의 팽창과 수축에 대한 상상은 늘 흥미진진했다. 커트 보니것은 20세기에 이런 재미난 소재로 자신이 목격한 인류에 대한 촘촘한 평가와 풍자를 이 책에 가득 담았다. 그러니 전체 리뷰란 건 불가능하다. 몇 문장씩 맛있게 곱씹어 즐기는 수밖에.

 

“2001년의 타임퀘이크는 우리를 1991년의 과거로 날려보내면서 우리의 과거 십 년을 미래 십 년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되면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행동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

 

삶은 일회성이라 예측도 수정도 불가능하다. 사변적 생각이긴 한데, 인간의 자유의지는 막막함을 견디는 수단으로 창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가이드도 지도도 없는 여정이니 힘을 내어 굳건하게 헤쳐 나가보자는.

 

인생을 살면서 인생을 알아보는 사람이 도대체 있기나 할까, 인생의 매 순간, 매 순간을?”

 

소설의 설정은 전부 기억할 수 있는시간을 사는 것이라 일종의 해방감이 든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수정할 필요도 없는 대본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이 될까. 모두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세계.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 10년이 지난 후, 대본의 마지막 장을 덮고, 지도에서 길이 사라진 곳에 서서 인간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마주한 것은 과거일까, 현재일까, 비로소 미래일까.

 

영원한 질문이란 이런 것들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커피를 끊은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콜드브루 커피 선물을 받았다. 미각이 예민하고 풍성해진 걸까. 기능이 회복된 걸까. 새로운 것에 늘 즐거워하는 뇌의 반응일까. 단지 풍미風味flavour가 좋은 커피인걸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인가.


 

헤밍웨이Hemingway라는 이름의 커피 한 모금에서 신선한 시가, 다크 초콜릿, 구운 헤이즐넛, 젖은 낙엽들의 향과 맛이 한 번에 폭발하듯 느껴진다. 뇌 속에서 우주의 수축이 순간 일어난 듯 즐거웠다. 강과 하천이 카페인 범벅이라는 사실을 알기 이전으로 잠시...

 

오늘이 지나면 밤이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올 해는... 상당히 괴로웠다. 노래방이라도 가서 욕설이 포함된 노래를 왁왁 비명처럼 불렀다면 후련했을까... 못해본 게 조금 후회된다. 수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정대로 오늘 2022년과 이별한다. 다시 무해한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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