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 인간은 왜 취하고 상처 내고 고립되는가
마쓰모토 도시히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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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읽은 기사 중에 청소년 사망자 중 50.1%가 자살로 사망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수치에 놀라서 다시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자살에 이르기까지 징후와 증상은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거나 방법을 모르거나 혹은 시도해봤지만 도움을 못 받은 것이다. 청소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병률도 1위다. 그러나 인구 대비 항우울제 처방량은 세계 최저다.’

 

약물 의존증, 교정, 법정 자살예방... 이 분야의 의사로 사는 것은 녹록한 것과 거리가 먼 일이다. 필요한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잃는다. 꾸밈없는 이야기를 따라 읽다가 저자야말로 의존할 약물이라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처벌이 거론되기 전에 다른 노력, 대책, 예방, 해법을 고민하지 않는 사회는 참 미숙하고 보잘 것 없고 시시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일은 모욕적이다. 법적 처벌은 그야말로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그건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며 대상은 다르지만 비범죄화에 대한 논의들이 생각났다. 합법화 전단계로 아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비범죄화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진지하고 현실적인 조사와 고민에서 나온 제안이다.

 

쉽고 간단하게 불법으로 규정하고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으면 예방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진다는 사회학 연구 사례들은 많다. 범죄자 낙인 효과라는 협박보다는 의료 서비스 접근을 향상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질병과 파생 범죄와 비극을 감소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범죄자가 되면 당사자는 심각한 차별과 낙인을 경험하고 사회 서비스에서도 배제 당한다. 범죄화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기능을 분명 갖고 있다. 차별주의자로 살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전과자에 대한 불편한 기분이 깊고 진하다.

 

한편으로는 도덕적 엄숙함과 엄벌주의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 감형과 사면과 정상참작에 분노하는 일이 잦은 대한민국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유린한 범죄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탄원서를 쓴 적도 여러 번이다.

 

내가 알게 되는 시점에는 이미 범죄가 발생했고, 사망한 피해자를 도울 길이 없다는 절망감만 남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 느낀 것이 합당한 중대 처벌을 요구하는 일 뿐이었다. 그 시간의 끝에서 매번 더 깊은 절망을 느꼈다.



 

비뚤어진 표현을 바로 알아채주고, 가능한 도움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임상치료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대해 발언하는 저자의 글이 밀려드는 한파에 마음을 덥힌다. 섭식장애로 밤새 토하던,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끼던 예전 일도 어느 문장들에서 위로 받는다.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마음의 고통을 마비시키지 않고도 살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사법체계에 호소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힘 내, 정신 차려,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자립을 목표로...” 이런 것들 말고 좀 더 튼튼한 연결이 필요하다.

 

“‘힘들게 하는 사람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나라가 약물 대책으로 취해야 하는 것은 법 규제를 늘려서 쓸데없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약물이라는 물건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무언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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