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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배우다 -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견인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이상호 지음 / 좋은땅 / 2022년 8월
평점 :
목사이자 저자인 이상호님은 인물들을 통해 한국 역사를 살펴보고, 시대의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을 나눕니다. 27명 중에는 아는 바가 참 적은 이들도 많습니다. 모르던 이야기는 더 재밌으니 다행입니다.
27개의 시선이 좋고 어려움이 있는 상황을 자신을 벼리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고색하면서 부럽습니다. 저는 역시 옛날 사람이네요. 인정할 수 없는 권위 대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걸으며 사는 것을 존경합니다.
거의 매일 이런 저런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좋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선대의 누군가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사건(?)도 부디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만드는 일에 쓰였기를 죽는 순간에도 바랄 것입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건 포기했습니다. 성장대신 노화만 명백합니다. 그러니 더 안간힘을 써서 어른인 척 흉내라도 비슷하게 내며 살아야겠습니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를 낳아준 윤동주... 오래오래 살았어도 맑고 고왔을 듯한 시인... 적당히 판에 박힌 태도와 말로 하루를 버무리고 마무리한 날이면 유독 맑은 정신과 시구가 생각납니다.
오늘 이동 중에 읽은 10쪽 남짓한 소설에는 생존을 위해 악의를 선택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저주를 한 것뿐이지만, 그런 습관을 가진 삶이란 또 무엇일까요. 반듯하게 살기에는 용기도 결기도 부족한 이들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나는 왜 사는지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의 아(我)의 자주독립과 비아(非我)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동등하게 대할 줄 아는 역사의식을 가진 민중이 되는 것, 이는 단재가 우리에게 남긴 역사의식의 선물이었다.”
커피를 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탄소 커피 얘기를 듣고 결심이 흔들거렸습니다. 커피 대신 마시라고 보내준 차 선물이 아직 많은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딴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의지가 될 이야기를 만나 힘이 됩니다.
“언제나 초의와 그가 보내준 차향을 몸과 마음에 품던 추사는 초의에게서 연락이 뜸하면 ’초의는 나를 잊었는가?‘라고 물으며 연을 놓지 않고 70살이 넘도록 벗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르던 역사에 대한 감사를 올립니다. 식민 지배가 중단되었다고 해서, 친일파 정리도 안 된 미군정 하에서, 어떻게 한글이 공식 언어가 되었을까 했는데, 역시나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만든 역사였습니다.
“이같이 누군가 우리글을 정리하며 표준어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기에 해방 후 미군정이 행정상 친일 인사들을 다시 등용시킬 때 우리는 한글을 지켜 낼 수 있었다. 결국 미군정은 외솔을 문교부 장관으로 채택했고, 외솔은 모든 학교 교과서는 한글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한자를 넣도록 하고 감옥에서 늘 연구한 대로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가로쓰기하기로 결정했다. 외솔은 이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일본말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면서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