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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되는 시간 - 자연 관찰과 진로 발견 ㅣ 발견의 첫걸음 3
템플 그랜딘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읽고 나니, 예전에 이해하던 용어, 생각, 느낌 등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관련 용어들은 이 책에서 번역된 대로 차용할 것이다.
자폐 진단을 받으면 평생 보호 시설에 사는 게 권장되던(?) 시절, 또 어머니인가 싶지만, 어쨌든 양육자의 노력이 그랜딘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고 계발하고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만든다.
원제 outdoor가 어쩌면 평생 갇혀 살았을 자폐인의 상황과 대조적이고, 한국의 장애인들이 외출을 위해 이동권 투쟁을 하는 현실과 겹친다.
예전에 동물학자 그랜딘이 불러온 축산업계의 시설물 변화를 아주 의미 깊게 보고 감탄했다. 축산동물을 먹고 살아야 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가능한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비폭력인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제 어린 시절 관심사가 어떻게 오늘날 제가 하는 일로 연결되었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또, 저처럼 어릴 때의 호기심을 평생의 열정으로 발전시킨 다른 과학자들도 소개할 거예요.”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과학자 이야기다. 과학에 관심을 두지 않아 요즘은 서운한 우리 집 십 대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랜딘이 나 이외의 많은 외부존재들을 기쁘게 관찰하는 시간들이 아름답다.
돌, 해변, 숲, 새, 밤하늘, 동물...
돌 깨기, 조개 줍기, 동물의 발자국 따라가기...
조난당한 고무 오리 인형, 해류 연구, 우주복에 얽힌 비밀...
“사람들은 오랫동안 제가 못하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 제가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동물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저는 동물학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진진하다. 동물학자인 저자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 - 지질학, 고생물학, 해양학, 연류연대학, 천제물리학 등 - 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특히 자폐를 가진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가장 의미가 클 것이라 짐작해본다.
“돌이켜 보니 호기심이 관찰로 이어졌고, 관찰이야말로 모든 과학의 핵심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무껍질과 잎맥의 무늬를 살펴보는 걸 좋아한다면, 구름의 모양이나 무당벌레의 점에 마음을 뺏긴다면, 돌을 쪼개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걸 즐긴다면 여러분은 이미 야외의 과학자입니다.”
자연이 내게도 즐거운 놀이터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너무 빨리 자연을 과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 분위기의 학습을 유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 커서(?) 30대에 산책과 관찰의 즐거움을 비로소 경험했다.
나도 시리즈를 따라가며 즐긴 게임이 있었지만, 그런 시간만 말고 밖에 나가서 주변을 보며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는 시간을 많은 이들이 누리기를 바란다. 시간을 보낸 대상은 의미를 갖게 되고 애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함부로 대하지 않게도 된다.
오래 전 지도교수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강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다”고 하신 말이 한참 뒤에야 이해가 되었다. 시도는 해봤으니 당시 강은 내게 논문 한 줄도 알려 주지 않았다. 물론 모두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