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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졸던 사람도 반짝 깨우는 멋진 아이디어에, 화풍 또한 태연하게 사실적이라서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심리를 낱낱이 짐작할 수 있겠다 싶다. 표현력이 어마어마하다. 주로 웃음이 풋 터지게 하지만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현실이라고 상상하면 나부터 막막하다.
배달도 포장도 가능한 줄여 살지만, 식재료를 구매한다는 것은 여전히 포장지가 남은 불편한 일이다. 유기농 제품을 주문하고 곱게 플라스틱 바구니들에 담긴 제품을 받으면 3초 정도는 멍해진다. 생산/판매하는 입장, 소비자의 입장, 지구시민의 입장이 거세게 충돌한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식품 배달의 실상은 어땠을까. 어쨌든 지금도 여전히 거의 모든 일이 가능한 비대면인 것이 안심이 되고, 나는 아직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오늘도 사돈댁 어른이 코로나 확진된 소식을 들었다.
모두의 이야기라 더없이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함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턱없이 희망도 그려보는 문제이다. 작품이 발하는 통찰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전하고도 싶은데 스포일러나 오용이 될 듯도 하다.
마침 오늘 좋아하는 강아지가 ‘갖고 싶다’가 아닌 ‘되고 싶다’란 카툰을 본 날이라 묘하게 생각이 이어진다. 인간이 사는 방식, 희생을 강요당한 동물의 권리, 멸종에 이를지 모를 환경 문제, 인간 내부에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노동 방식과 실상...
나는 소비하는 인간이다. 지불능력을 자립능력으로 잘못 이해하고 살아왔다. 저자의 문장처럼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존재’이다.
“쌓여 가는 배달 상자와 일회용 플라스틱 더미를 보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바라볼 용기와 에너지가 없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휩쓸려 가는 일상에 균열을 내 본다.”
멋진 일이다. 본질을 바라볼 용기는 있지만, 에너지는 좀 부족하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란 핑계로 적당히 하는 주제에, 원망은 크다.
여행을 가든, 놀러 나가든, 일하러 가든 누구도 ‘함부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면서도, ‘안전사고’ 예방법으로 압사관련 정보가 전송되는 것에 화가 나면서도, 주말에는 집에만 머물고 싶다. 균열을 내보려고 하는 분들을 안전하게 응원만 하면서...
자발적인 육식을 하는 일이 없어서, 돼지를 요리할 여러 궁리와 계획과 과정들이 모두 끔찍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경험 해보시면 좋겠다. 돼지고기가 아닌 돼지를 죽인다는 일과, 관련된 온갖 상품 쓰레기들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을...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자르는 일에 동원된 모든 일을 계산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나는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 좋다. 300g 일인분의 진짜 가격을 아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