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인 내가 어느 날 직장인이 되었다
전은영.김소라 지음 / 동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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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이야기에는 늘 마음이 따끔거린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읽다보면 말하다보면 쓰다보면 명치 쪽이 아파온다. 뇌신경이 내장에 아주 많이 퍼져있으니 별난 일은 아니다. 이유는... 호불호 탓이 아니라 명예남성처럼 살아온 나 때문이다.

 

인생사를 펼치고 싶진 않지만, 자기 방이 있는 여성들, 존경 혹은 대접받는 여성들, 폭력적이지 않은 남성들을 보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목적지향적인 큰 야망(?)이 없음을 가장 크게 걱정하셨다. 오랫동안 다른 현실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살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서 친구들도 비슷비슷했다. 여성성을 계발하여 드러내거나 재능이 있는 친구들도 없었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악당(?)같은 이들도 없었다. 페미니즘은 교양과 상식으로 공부해야하는 사상이라고 믿었지만, 경험한 텍스트들에는 삶과 밀착된 실천으로 이어질 동기와 고리가 아주 약했다.

 

명예남성으로 살다가 삶의 경계가 넓어지면서 수많은 모순과 차별과 불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알게 모르게 얼마나 무심하고 폭력적인 표현들을 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모른다. 적지 않았을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었을지 전혀 모른다.

 

자각이 생기고 나서 다시 접한 혹은 새롭게 만나는 페미니즘/페미니스트 관련 책들은 언제나 통증을 동반한다. 모르고 하는 건 제대로 된 사과는 아니지만, 죄송하고 거듭 사과드린다. 2022년 여성들이 맞서는 참담한 현실에 기여한 책임이 있을 거라고 느껴서 괴롭다.

 

이 책에도 명예남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회부 기자인 주인공이 직장에서 생존기술로 선택한 방식이다. 제목으로 상상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 오래 전 학내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재빨리 고발과 진상규명과 퇴학으로 이어진 조처가 내 망상처럼 느껴지는 현실이다.


 

취업 면접에서 이런 질의응답이 오고간다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 위험부담 없이 직장 내 성희롱할 상대를 구하는 자리인가.

 

"미투를 어떻게 생각하나?"

 

덕분에(?) 오래 전 선배의 면접 일화가 기억났다. 함께 유학 갔다 남편이 먼저 다른 지역의 대학에 취업했다. 그런 개인사를 묻는 것도 의아했는데, 기막힘의 절정은 그 다음 질문이었다고 한다. 근심어린 표정과 더불어...

 

당신이 서울에서 취업하면 남편 식사는 누가 차리나요?”

 

분명 실화입니다. 그 일화를 들으며 우린 신나게 비웃었고, 자리에 함께 있던 선배의 남편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끼니 걱정을 그렇게 해줄지 몰랐다고 황당해했지만, 이런 종류 혹은 더 저열한 질문들이 당시의 만행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통해 보니 괴롭다.



 

외모와 교양을 갖춘 꽃이 되라 요구하면서 남성화장실까지 여성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여성답지만 불편할 정도로 예민하거나 똑똑하면 안 되고, 털털하고 성격 좋아야 하지만 충분히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응을 위해서 자아든 정체성이든 찢어발긴 다중인격체가 되어 분열을 감내하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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