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 - 줄일수록 뿌듯한 제로 웨이스트 비건 생활기
이소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경 관련 도서는 우선 무게가 아주 가볍다. 이 책 역시 손가락 두 개로도 집어 올릴 수 있다. 종이 냄새도 촉감도 반사 없는 색감도... 녹색평론을 처음 만난 날과 같은 그리운 기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감사함.

 

출판사 입장에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표지의 흠집을 이유로 반품 회수 비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글쎄... 책은 내게 완성품이기도 하지만 - 그래서 줄도 안 긋고 접지도 않는다 - 그렇다고 흠집 때문에 같은 내용의 책으로 교환하지는 않는다. 기분은 이해하지만 아깝고 아쉽다.

 

“1.5.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이 이 숫자를 넘기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때가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조차 아무 소용이 없어지겠지.”

 

인류의 앞날은 뿌옇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실천하며 나의 존재를 느끼고 희망의 조각들을 모은다.”

 

모르지 않은 생태주의/비건의 삶에 대해 쓴 에세이라 알 듯한 건방진 기분으로 읽었나 보다. 워낙 솔직하고 재밌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도 출중하신 분이라 막 웃다가 읽은 분량이 넘어갈수록 앞부분의 에피소드는 모두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작전(?)이었단 낭패감을 느꼈다.

 

지옥의 형벌장에 내가 버린 쓰레기의 방이 있다면, 나는 분명 빵 봉지와 빵 끈이 가득한 방에 가게 될 거야.”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거 하는 내 맘대로 하자’ (...)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들은 정보들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어, 먹을 것에서 즐거움보단 슬픔을 먼저 봤다.”


 

이미 여러 해 실천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존경스러운 분이었다..고군분투의 목록들에는 나는 흉내도 못낼 일도 있다 - 사계절 자전거 출퇴근, 텃밭농사 등등. 내가 더 오래 한 건 노푸(노샴푸)와 비건(플렉시테리언 수준이라 이도 애매하다) 밖에 없는 건가...

 

주방 조리대를 보니 수확해 놓은 파와 가지, 하나 겨우 건진 단호박이 놓여있다. (...) 물끄러미 밥상을 바라보니 상반기에 옥상을 오가며 흘린 땀방울이 보였다. (...) 지난 몇 개월의 희로애락이 떠올라 무엇 하나 허투루 씹어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분명 어떤 의미가 있었다. (...)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아니라 맘 편히 내가 원하는 걸 먹는 것, 이것이 나의 채식 생활의 모토다.”

 

! 수박을 몽땅 먹어치우는(?) 일화가 가장 충격적. 상상도 못해봤습니다. 남길 거면 유기농 수박 왜 샀나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날, 어딘가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 형언할 표현을 못 찾은 연대감이... 그곳은 이상한 나라, 상상 속 해방구, 우정으로 만든 연대와 철학의 공동체 같았다. 금방 원하는 세상이 올 거라 믿음 20대로 돌아간 듯했다. 잠시지만.

 

미안함과 희망이 범벅된 감정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오늘 속 시원히 말하니 대나무 밭에 가서 임금님 귀의 생김새를 외쳤던 신하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둘러보면 다들 초식동물 같은 선한 외모에 고운 목소리로 랩을 하고 있었다. 그래, 초식동물들이 무리 지어 있으면 무시무시하다고!”

 

조천호 교수님 강의 내용을 인용해 주어 또다시 폭풍 감동... 기회가 되심 여러 동영상 자료가 있으니 많이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엄청 다정하고 낙관적인 분이시니 겁 내지 마시길.

 

인류는 작은 습관을 고치기도 너무 어렵고, 모순 역시 많아 완벽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서로 공감하고 함께 믿게 될 때 세상을 무시무시한 힘으로 바꿔낼 수 있습니다.”

 

소개하고픈 내용을 다 적자면 끝이 없어서 그냥 이렇게 마칩니다. 지역 도서관 신청해두시고 기분 좋게 웃고 싶으실 때 만나보셔도 참 좋을 멋진 책입니다. 가방에 넣고 다녀도 아주 가볍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얻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더 불행해지지 않았는지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오늘 나의 편의는 다른 존재의 무엇을 착취한 것일 수도 있음을. 그것이 내 의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