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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ㅣ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속상하고 슬프게도 2061년 지구는 곧 멸망한다는 설정이다. 혜성 충돌이 예정되어 있고, 새로운 거주 행성도 있다. 그 행성 이름 - 세이건 - 은 경애하는 천문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위기와 혼란의 시대에 출현하는 단체의 이름은 ‘콜렉티브collective’, 하나가 된 구원을 주장하는데, ‘불일치와 불평등을 제거하자’는 아주 위험한 제안을 한다.
콜렉티브에게 점령된 우주선에 타고 있던 주인공은 다행하게도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은 채로 살아남았다. 콜렉티브에 대한 묘사는 주장대로 동일 인종으로 개조된 비슷한 모습들이다.
다양성이 아닌 동일화를 최적화라고 강변할 수 있지만 생태계에서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없거나 세균과 질병에 가장 취약한 집단 상태이다.
과학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것은 물론, 하나가 되겠다면 그들 내부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자원을 약탈하고 독점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소비하는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짓도 한다. 낯설지 않고 도리어 기시감이 든다는 것이 씁쓸하다.
“너희는 살던 곳의 공기와 강과 바다를 오염시켰지……. 이윤을 위해서 말이야. 누군가는 굶주렸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배 터지게 먹었고. 그게 바로 콜렉티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인간성’이나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 같지 않다’는 것을 욕으로 사용하지만, 인간은 그런 이상적인 존재였던 적도 없고, 인간다움은 거대한 재앙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고민해야 한다. 인간인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할 공존의 가치들이 무엇일지를.
학교에서 자연과학을 배우면서 신비함이라는 포장들이 벗겨졌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은 온전히 남았다. 오히려 섬세하고 완벽한 매커니즘을 알게 되니 그 조율이 감동이었다.
글을 배우고 스스로 읽은 책들 중에는 잊어버린 것이 아주 많지만, 취학 전 할머니 옆에 누워 까만 밤을 느끼며 들었던 이야기들은 지금도 모두 기억이 난다. 그리운 육성과 더불어서. 저자가 작은 사막마을 출신이라고 해서, 밤마다 끝없이 들려왔을 이야기들을 나도 경험한 듯 그립게 떠올려 본다.
“불뱀이 지구에 너무 가까이 날아왔을 때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 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나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줄 거다. 할머니가 어떻게 자신이 만든 음식에, 살던 집에, 상상해 낸 이야기에 사랑과 인생을 담았는지 들려줄 거다.”
SF 장르에 과학적 지식에, 사회비판에, 문명과 인간성에 대한 숙고까지... 한편으로는 묵직하고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운 어린 밤들의 풍경과도 같았다.
“할머니를 남겨 두고 떠나가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할머니가 내 뺨에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네 일부란다. 너는 나와 내 이야기를 지니고 새로운 행성으로, 그리고 수백 년 미래로 가는 거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