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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드라이브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0월
평점 :
메모리얼memorial 드라이브... 회상록memoir... 시인이 쓴 에세이...
어디서든 무슨 이유로든 친분에 관계없이 죽임 당한 지금도 죽임 당하는 여성들... 저자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저자의 새아버지에게 살해당했다. 애가, 비가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기록되었다.
표백하지 않은 듯한, 형광빛이 아닌 종이색과 클래식한 폰트가 좋다. 추모와 애도의 빛과 형태처럼 느껴진다.
“딸은 오랜 침묵을 깨고 비로소 엄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남겼다.
이번에는 딸이 자신과 엄마를 구하려 한다.
나는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글쓰기를 처음 본다.
무섭도록 소중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딸이 엄마의 손을 다시 꼭 잡고 문지방을 넘은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김소연(시인)
“나는 항상 책의 감촉을, 책이 말에 실질적인 무게를 실어주고 내가 쥘 수 있는 신성한 물건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사랑했다.”
생존자의 기록, 도움이 되었을까 걱정부터 앞서는 글쓰기다. 어머니가 살해된 기억을 상기하여 서술하는 일의 무거움이라니. 마무리를 하고 출간을 했다는 것이 내 염려가 무용할 강인한 이라고 느끼지만, 읽는 내내 숨 쉬기를 잊었다 내쉬었다... 를 해야 했다.
“숨겨지고, 위를 덮어버려서, 거의 지워진 흔적. 나는 이제 우리의 역사를, 엄마 인생의 비극적인 경로와 그 유산으로 인해 내 삶이 빚어진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운 추억을 담지한 공간이 아닌, 치명상을 입힌 시절의 공감, 285번 도로의 윤곽과 풍경은 아직 저자의 심장에 찍혀있다고 한다. 선명한 상처가 흉터가 되지 못하고 피도 멈추지 못한 것인지 뜨겁고 아프다.
“내가 해야 할 모든 말이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일기장에 적혔다. 그리고 나는 새로 얻은 이 목소리에서 생전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자아의 깊이를 느끼게 됐다.”
‘쓸 수밖에 없어서, 살아야 해서 글을 쓴다’는 현실은 저자에게도 다행히 유효했다. 글쓰기는 자아가 분열되는 것을, 안으로부터 잡아먹히는 것에 저항하는 자구책이었고, 형언하기 힘든 참담한 현실에서 생존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왔다.
“개인적으로 '혐오'라는 표현방식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며, 모든 사회인 역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혐오스럽고 역겹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마땅할 만큼 충분히 분노해야 한다.”
희생이 너무나 크고 아픔과 분노가 거대해서 상황이나 심정에 동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절박함을 나는 분명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를 혐오하자’는 따를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그건 의지이고 결심일 뿐, 내 감정적 반응은 아주 거친 분노와 폭력성을 띤다. 그래서 더욱 자제하려 애쓰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지만,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포함한 모든 관련 범죄를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문장을 쓰면서도 화가 솟구친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집에 머물라’는 행정명령에 나는 두려웠다. 집 밖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집 안에서 맞고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피해갈 곳은 여전히 운영되는 건가...
며칠 전 팬데믹 시절 가정폭력과 범죄에 대한 분석자료가 발표되었다. 틀리길 바라는 것들은 늘 예상 범위에 있는 슬픈 현실이 증가된 숫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저장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머리가 뜨거운 상태의 작업이라 기억도 흐릿하다.
사적인 글이 작품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것 같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살해 범죄’ 사건에 집중한 책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인류가 정상과 위계를 내세워 저지른 오래되고 더 거대한 폭력이 있다.
1970년대 인종차별은 알고 봐도 충격적으로 극심했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결혼은 해당 주에서 불법이었다. 저자는 태어나보니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를 둔, 혼혈, 잡종, 깜둥이 등으로 불릴 운명이었다. 더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백인 아버지의 무력한 이상주의와 결국엔 회피를 갑갑하게 느낀다.
인간의 수명으로 역사를 보면, 느린 변화의 속도와 빠른 퇴행이 기가 막히고 절망스럽게 보인다.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여기의 현실도 암담하고 가차없다고 느낀다. 바로 앞의 미래도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끝까지 해나가겠다는 사람들만이 확실한 희망의 근거이자 실체이다.
“당신은 잊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당신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 않은 채 아주 오랫동안 앞으로 갈 수 있지만, 기억은 고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