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가 만든 숲 - 소설 내러티브온 3
나인경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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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신예 작가와 여덟 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하루에 하나씩 맛있고 즐겁게 읽을 생각에 즐거웠다. 표제작부터 읽게 되는 오랜 버릇으로 펼쳤다. 내가 생각하던 구도가 아니라서 유쾌했고 쓸쓸하지만 단호하고 구체적인 희망에 놀랐다.

 

공간이 기억을 담지하는 특별하게 소중한 대상이 되는 것은 늘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고 다니 그렇게 된 것이다. 늙은 독자는 이렇게 수용이 더 많고 젊은 작가는 없어졌다면 원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한다. 행동을 한다. 무척 놀랐고 힘껏 응원한다.

 

“(...) 숲도 없어지지 않았으면 했지만 아무것도 못했고, 없어지고 나서도 그리워만 했다. 나쁜 태도였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지레 단정하고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 이제는 그렇게 안살 거예요.”


 

어릴 적에 숨바꼭질 하다 장롱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안에서 어렵게 문을 닫고 나니 무서워졌다. 칠개장이라서 검은 칠이 되어 암흑 속에 들어온 듯했다. 차마 문을 열고 나가진 못하고 빨리 찾아내어 주길 기다렸다.

 

판타지 문학과 영화가 떠오르는 [자개장의 용도]는 그래서 특히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이 자개장 안에서는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면 갈 수도 있다. 이 세상의 계산법은 어찌나 정확한지 행운에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법이 없다는 것이 쓸쓸하지만 생각해볼 메시지다.

 

욕망 속에서 길을 잃지 말자, 미리미리 갈 곳,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두자. 욕망을 키워서 경쟁으로 내몰고 도무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세우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모두에게는 행운도 능력도 가장 큰 대가를 가져가는 함정이 될 수 있다. 많이 보았다.

 

요새는 어디에 가장 가고 싶어?”


 

새로운 바이러스는 모두 미증유이다. 인간이 면역력을 가지지 못한 바이러스는 아주 많고, 변이 속도를 따라갈 방법도 없다. 더구나 오랜 시간 동안 섬세하게 균형이 맞춰지던 생태계가 망가지면 변이도 감염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멸종과 운이 좋아 생존 사이에서 사실 선택지가 없다면, 인간의 지식과 능력이 쓰레기 발명과 자멸 무기 개발에 쓰이고 남은 자본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남아 살아가야하는 이들은. [시티 라이트]의 술집 우로가 전형적인 세기말 정서로 느껴졌다.

 

극적인 사건이 없이도 나는 일상에서 자주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거나 알고 싶지 않은순간들이 적지 않다. 이성과 합리성과 지식과 토론과 대화와 합의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의 실상에 놀라고 난 뒤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만도 하소연도 아니다. 그래,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게는 고통이란 게 없었으니까. 마비된 감각에 대한 미련은, 아쉬움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었다. 그러니까 중독 같은 게 생길 리 없어. 무너질 리 없어. 믿었던 것이다.”


 

쓰다 보니 분량이... 언급했듯이 8편의 작품들 모두 사유를 촉발하거나 깊게 할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희망도 고민도 좌절도 만났다. 기록되고 출간되어 기쁘다. 읽을 수 있어 기분의 한 그리드가 내내 주황빛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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